[시인의 詩 읽기] 내일 첫차를 타겠습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여기 어딘가로 향하는 마음이 있다.
잠깐 들러 사람 구실하고 와야지 하다가 잠깐이 아니라 좀더 머물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제 마지막이니 고인 옆에 잠시 있자면, 고인은 잘 모르더라도 상제 옆에 조금 앉아 있어주자면 늦은 시간이어도 좋을 것이라고 재차 마음을 다잡는다.
상제들은 일면식도 없지만 고인에게 마음의 빚이 큰 사람일 수도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 어딘가로 향하는 마음이 있다. 잠깐 들러 사람 구실하고 와야지 하다가 잠깐이 아니라 좀더 머물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제 마지막이니 고인 옆에 잠시 있자면, 고인은 잘 모르더라도 상제 옆에 조금 앉아 있어주자면 늦은 시간이어도 좋을 것이라고 재차 마음을 다잡는다. 낯선 도시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돌아오는 시간을 살피는 이 어려운 마음.
나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인가. 사람 일에 있어 나는 주로 피하는 사람인가, 달려드는 사람인가.
박준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서 잠시 버스 안 풍경을 그리다가, 잠시 내 안의 속 좁은 마음의 골목들을 떠올리다가 시의 주인공과 함께 밤을 지새우기로 한다.
어쩌면 주인공은 상가에 와서는 안될 사람일 수도 있다. 상제들은 일면식도 없지만 고인에게 마음의 빚이 큰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함께 그의 앞에 앉아 멀거니 있어 준다면 이 시를 읽고 난 후의 먹먹함으로부터 좀 풀려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죽게 된다면 그 한 친구는 어떻게 처신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친한 친구였다. 급하다며 돈을 몇번 꿔가더니 끝내 내 휴대전화 착신을 차단했다. 내가 그 친구를 많이 좋아한 것으로 그만둘 것인지, 아니면 내 장례식에 그 친구가 조문을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두리번거릴 것인지 생각한 적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나도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는 일이 많아졌지만 세상에는 ‘죽는 일’보다 ‘태어나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병률 시인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