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명분 해방일지

관리자 2024. 3.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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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학당 주변 농촌 마을에는 일명 농사 도사(道士)가 많다.

친환경농법으로 정성스럽게 쌀을 재배해 직접 도정하고 판매하는 청년 지도자인 정(鄭) 도사의 쌀로 밥을 지어 입에 넣는 순간 황홀해져 행복하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재배한 고추를 하나하나 깨끗하게 닦아 건조시켜 빻아 만든 효부 민(閔) 도사의 고춧가루는 색깔부터 남다르고 모든 재료에 품위를 높여준다.

실리와 실재는 제쳐두고 이념과 명분에 매여 끌려 다니는 정치권과 사회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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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도사가 생산한 농산물
가장 빨리, 높은 가격에 팔려
품질 좋고 맛있는 것 원하는
인간의 ‘이익’ 추구 본능 때문
농촌 살리는 길 ‘명분’만으론
소비자들 마음 얻을 수 없어

석천학당 주변 농촌 마을에는 일명 농사 도사(道士)가 많다. 친환경농법으로 정성스럽게 쌀을 재배해 직접 도정하고 판매하는 청년 지도자인 정(鄭) 도사의 쌀로 밥을 지어 입에 넣는 순간 황홀해져 행복하다. 마을 이장 지(池) 도사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으로 키워낸 들깨로 짠 들기름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명품이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재배한 고추를 하나하나 깨끗하게 닦아 건조시켜 빻아 만든 효부 민(閔) 도사의 고춧가루는 색깔부터 남다르고 모든 재료에 품위를 높여준다. 이분들의 농산물은 때를 놓치면 구하기 힘들다. 지난가을 구입한 이곳 들기름을 아침마다 한숟갈씩 먹어 면역력이 높아졌다는 학생이 재구매를 문의했지만 이미 다 팔려 없다고 전했단다. 확실히 좋은 제품은 빨리, 비싸게 팔린다. 물건을 사달라고 권유한 적도 없고, 홍보한 적도 없는데 왜 농사 도사들이 내놓은 농산물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걸까? 그 농산물을 사는 것이 나에게 이익(利)이 되기 때문이다. 품질·안전·청정·맛 등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그 농산물을 구매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명분(義) 역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지만, 명분만 가지고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아무리 우리농산물을 팔아주는 것이 애국이고,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명분을 강조해도 한계가 있다. 소비자는 맛있고, 안전한 농산물을 원한다. 농촌으로 와서 농사짓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결국 귀농의 이익이 정확히 제시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설득할 수 없다. 아이를 많이 낳는 일이 애국하는 일이라고 홍보해도 젊은 부부는 아이를 낳는 일이 이익이 되는 사회를 원한다. 선거에서 본인에게 표를 주는 일이 명분과 이념에 합당하다고 후보자가 울면서 호소해도 유권자는 그 사람이 당선됐을 때 우리 지역사회와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한다. 명분과 실리 모두 중요하지만 실리를 제쳐두고 명분만을 강조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손자병법’에서는 이익과 손해(害)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말한다. 이익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려들고, 손해가 있는 곳에 사람들의 마음이 떠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 동기는 결국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실리주의적 접근이다. “저절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오게 하려면 이익을 줘라(自至者利之·자지자리지). 상대가 나에게서 떠나게 하려면 손해라고 생각하게 하라(不得至者害之·부득지자해지).” 이익이 되면 오지 말라 해도 저절로 올 것이고, 손해라고 생각하면 떠나지 말라 해도 저절로 떠날 것이라는 전략이다. 인간의 행동 동기가 이익이라고 해도 명분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기다. 아무리 이익이 있더라도 명분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을 완전하게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위한 실리가 없으면 껍데기만 있는 명분일 뿐이다. 독립투사들은 비록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나라의 독립이라는 명분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그 명분 뒤에는 조국의 독립과 해방이라는 만인의 이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농산물을 팔아줘야 한다는 명분 안에는 고품질이라는 이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애국이라는 명분 뒤에는 국민의 행복이라는 이익이 있어야 한다. 실리와 실재는 제쳐두고 이념과 명분에 매여 끌려 다니는 정치권과 사회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 공부가 먼저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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