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겐 동맹도 적도 없다, 미국의 이익만 있을 뿐

권경성 2024. 3. 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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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재도전] (하) 트럼프가 바꿀 세계
유럽에 반감… 러시아와는 가까워질 듯
한국엔 방위비 압박 가능성… 북에 기회
관세 인상 공언… “비용, 미국인이 부담”
2019년 12월 4일 영국 왓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왓포드=AP 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는 미국인의 불안감이 반영돼 있다. ‘미국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의 23%뿐이었다. 이미 미국 저변의 정서가 ‘고립주의’ 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다. 일찌감치 11월 대선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이런 흐름을 주도하며 잘 올라타고 있다.

‘친구가 많으면 싸움에 휘말리기 십상이고, 편들 일이 많아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2기 재도전에 성공하면 아마 미국은 그런 상황을 벗어나리라는 게 한국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미국 대학·싱크탱크 전문가 6명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 경우 곤란해지는 것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안보 공백과 무역 위축을 감내해야 할 세계, 특히 미국에 의존해 온 자유주의 진영 동맹들이다.


동맹도, 적도 흐릿해질 트럼프 외교

분야별 트럼프 2기 정책 전문가 전망. 그래픽=송정근 기자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식은 1기 집권 때부터 호의적이지 않았다. 안보든 무역이든 호혜적이기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용당한다고 여겼다.

집권 2기가 된다고 이게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군사와 외교 분야 전문가를 두루 기용했던 1기 때와 달리 충성파만 기용, 자기 뜻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윌리엄 월포스 다트머스대 교수는 “가장 두드러지는 2기 트럼프 행정부 외교 정책 특징은 더 커진 유럽 동맹과의 불화일 것”이라며 “(미국 우방)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침략국인) 러시아와의 협상을 시도할 개연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13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는 미국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격납고에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이라고 동맹 경시의 예외가 되기는 어렵다. 로버트 매닝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인) 방위비 분담금을 100% 넘게 인상하라고 (1기 행정부 때에 이어) 거듭 압박하며,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이 2022년 발간한 회고록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분담금을 5배 이상 늘릴 것을 한국에 요구하며 내부 회의 때 미군 철수를 자주 거론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사랑 시도어 퀸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국)’와의 관계도 거래 위주가 될 것”이라며 “기후변화 대응 구상의 폐기와 대외 원조 프로그램의 축소가 추진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민 문제를 놓고 멕시코나 카리브해 국가들과 오히려 심한 갈등이 빚어질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주 국경 도시 티후아나에 위치한 미국-멕시코 국경에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한 장벽이 높게 세워져 있다. AFP 연합뉴스

경선 유세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좀체 빼먹지 않은 단골 레퍼토리가 자신이 러시아 중국 북한 지도자들과 잘 지냈고, 자기 임기에 큰 전쟁이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모호한 피아 구분이 한반도에서는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집권 시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든 당장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미국 대리전을 처리하는 게 먼저일 수밖에 없는 데다(매닝 선임연구원), 2019년 10월 이후 대화를 거부하다 러시아와의 밀착에 성공한 북한을 상대로 이제 와 관여(대화)를 시도해 봐야 별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이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또 “북한이 미국 대선 직전 대규모 도발을 감행하고 그것을 바이든 정책 탓으로 돌리며 긴장 완화를 명목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화를 제안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거센 통상 압박 예고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판문점=AFP 연합뉴스

트럼프 캠프의 정책 모음집인 ‘어젠다 47’에서 가장 비중이 큰 분야가 통상이다. 모든 수입품을 대상으로 현재 관세율에 일괄적으로 10%포인트를 추가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보편적 기본 관세’ 구상이 공약에 포함돼 있다. 트럼프 캠프가 미국 무역 적자 원인의 하나로 한국산 자동차·반도체를 지목한 만큼 한국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한국무역협회의 관측이다. 동맹이라고 봐주지 않는 ‘평등한 관세 장벽’인 셈이다.

이 정책은 미국 내 산업과 일자리 보호가 명분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논란거리다. 정말 미국에 득이 되느냐는 것이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의 클라크 패커드 연구원은 “관세 인상에 따른 (물가 등) 비용이 미국 국민에게 전가되고, 미 수출품에 매겨질 게 분명한 보복 관세는 미 농부와 목장주에게 큰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시 정권을 잡을 경우 중국 제품에는 60%가 넘는 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그러면 미중 간 경제 관계는 ‘디리스킹(탈위험)’을 넘어 ‘디커플링(탈동조화·단절)’ 단계가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 우려다. 저렴한 중국산 수입품이 없으면 미국도 물가 상승 등으로 연간 1조5,000억 달러(약 2,000조 원)의 비용이 발생하리라는 게 미 싱크탱크 조세재단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강경책이 현실화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퍼트리샤 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대만 방어를 확약하는 대신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치고 있다는 식의 동맹 폄하를 서슴지 않는 트럼프의 (이중적) 태도를 감안할 때 중국 정책이 어떨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압박 일변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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