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LG vs 중국의 GE [특파원칼럼]
한국서 MZ라 불리는 '젠지 세대(Generation Z, Gen-Z)'는 도박을 잘 안 한단다. 갬블보단 합법적 코인이 더 화끈하다. 사막에 콘크리트를 퍼부어 만든 미국 라스베이거스도 그래서 손님이 줄어 망할 뻔했다가 전시컨벤션과 스포츠 연예 이벤트로 전향해 살아남았다. 세기의 격투 대결과 미국인의 축제 슈퍼볼,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유투(U2)의 라이브 밴드 공연을 볼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살린 컨벤션 가운데 생활가전에 관해선 이제 두 가지 전시가 자웅을 겨루고 있다. 1월 초에 하는 CES(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와 2월 말의 KBIS(Kitchen Bath Industry Show)다. 한국에선 전자는 세계가전전시회로, 후자는 주방욕실산업대전으로 부른다.
본래 미국 가전협회(CEA)가 주관하는 CES가 메인이었지만 이 쇼가 요즘 컨버전스 성격으로 발전해 미래기술 테크 경연장이 되면서, 전통적 가전쇼는 이제 KBIS가 맡는다는 평도 나온다. 올랜도 등에서 열리던 KBIS가 라스베이거스로 옮겨오면서 두 전시는 구별점을 찾기 시작했다. 첨단기술은 CES가, 미국인의 주거미래는 KBIS가 제시하는 것이다.
지난달 말 직접 찾아본 KBIS 2024는 이를테면 '천조국 건설업자의 레고랜드'였다. 본래 미 주방욕실협회가 주관하는 KBIS와 국제 건축 전시회인 IBS가 따로 진행되다가 2014년부터 합쳐지면서 소매보단 도매, 즉 빌더(건설업자) 중심의 축제가 됐다.
이 전시 현장에선 제품 호응도에 따라 대규모 B2B 계약도 이뤄진다. 때문에 제조사 경쟁은 물밑다툼이 아니라 대놓고 견제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아예 전시부스 가운데 전면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을 벽으로 쌓아올렸다. 첫날에는 취재도 막고 예약한 빌더들만 부스로 들여 신제품을 보게 했다.
미국 가전의 대명사 월풀은 아시안 관객을 경계했다. 2021년부터 TV를 제외한 생활가전 매출에서 LG전자와 세계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견제가 심해졌다고 한다. 신제품 사진을 찍어보려고 스마트폰을 들자 곧바로 한국에서 왔냐고 묻더니 촬영을 삼가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1등 GE(제네럴 일렉트릭) 어플라이언스는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행사장 중심에 가장 큰 부스를 차려놓고 산하 6개 브랜드의 대표작을 전시했는데 빌더들의 평가가 매우 높았다. 최상위 브랜드 '모노그램'과 디자인 중심의 '카페', 미드레인지의 '프로파일', 소매브랜드 'GE', 가성비 범용 '핫 포인트'와 이들을 거느리는 '하이얼'까지 망라했다.
KBIS에서 GE의 자신감은 빌트인 시장에서의 최강자 위치 덕분이다. 토마스 에디슨이 남긴 120년 역사의 가전사를 7조원에 삼킨 중국은 이른바 미국식 브라더후드가 아니면 끼어들기 힘든 B2B 마켓을 퀀텀점프로 넘어버렸다. 브랜드와 기술, 원가 역량의 3박자를 갖춘 GE-하이얼 연합은 이제 막 매스마켓을 점령한 LG와 삼성이 꼭 넘어야 할 하이엔드 시장의 산처럼 보였다.
이날 행사를 꼼꼼히 돌아본 류재철 LG전자 사장(H&A사업본부장)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류 사장은 "2016년 하이얼이 GE를 인수했을 땐 국경 간 통합(PMI)에 고전할 걸로 여겼는데, 오히려 짧은 시간에 GE의 브랜드에 중국의 제조능력을 더해 막강해졌고, 제품이나 기술에 있어서도 자신감이 엿보인다"고 평했다.
하지만 승산은 있다. 가전 모터를 직접 만드는 LG는 내구성과 품질이 세계 최고다. 냉장고 한 대, 가스오븐 한 대에 기천만원짜리 시장에서 맞설 브랜드와 영업망이 문제였는데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내놓고 8년을 준비했다. "가전에 진심"이라는 류 사장은 "기술도용-반덤핑-세이프가드 3종 세트도 이겨냈는데 뭐가 무섭겠냐"며 "3년 내 B2B도 잡아볼 테니 한번 지켜보라"고 했다.
라스베이거스(미국)=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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