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도 안 해도 '죽일 놈' 만들었다…김포 공무원, 민원 100건 시달려

김포(경기)=김지은 기자, 정세진 기자, 서울=김지성 기자 2024. 3. 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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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8시30분쯤 경기도 김포시청 앞에 9급 공무원 A씨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생겼다. /사진=김지은 기자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했던 친구였거든요. 성실하고 묵묵히 일하고…"

7일 오전 11시 경기 김포시 사우동 김포시청 근처에서 만난 공무원 B씨는 눈물을 흘렸다. B씨는 지난 5일 포트홀(도로파임) 공사 관련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김포시 9급 공무원 A씨(38)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다.

B씨는 "이제는 더 이상 못해 먹겠다"며 "좋은 건 당연한 거고 미진한 부분은 담당자를 '죽일 놈'으로 만드니까 힘들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5일 오후 인천 서구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주변 동료들은 A씨에 대해 "신규 직원이었지만 성실한 사람이었다"며 "악순환처럼 번지는 공무원 민원 대응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료 직원 이야기를 종합하면 A씨는 지난달 20일 전후로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이어지는 연휴를 앞두고 포트홀 보수를 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포트홀 관련 민원은 겨울철에 급증한다. 눈과 비가 불균질한 도로 표면 틈 사이로 들어가면서 포장 내부가 쉽게 약해지기 때문이다.

당시 관련 업무를 맡은 사람은 A씨 포함 총 4명. 하루 평균 10건이었던 민원 신고는 이 기간 매일 같이 100통 넘게 접수됐다. 직원들은 출근부터 퇴근까지 콜센터 직원처럼 전화를 받으며 "세금 받고 뭐하냐" "잘라버리겠다" "당장 공사해라" 등 온갖 욕설을 들었다.

워낙 민원이 많은 탓에 열심히 일을 해도 업무는 줄지 않았다. 도로 보수는 당장 공사를 진행하고 싶어도 업체와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대낮에는 도로에 많은 차가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공사를 하기도 어렵다. 보통 새벽이나 밤 시간대 공사를 진행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A씨를 포함한 직원들은 공사를 안하면 "당장 나와서 네 눈으로 봐라", 공사를 진행하면 "왜 차 막히게 공사하느냐" 등 비난을 들었다.

동료 직원들은 지난달 29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영향이 A씨에게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줬다고 했다. 당시 커뮤니티에는 김포 전호대교 일대 도로 보수공사로 교통 체증이 빚어지자 불편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A씨 실명, 담당업무, 직통번호 등을 공개하며 "집에서 쉬고 있을 이 사람 멱살 잡고 싶다"라고 썼다.

경기도 김포시청에 마련된 분향소에 동료 직원들이 A씨에게 남긴 말. /사진=김지은 기자

A씨는 지난 4일 퇴근한 후 뒤늦게 이 글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힘든 업무 속에서도 책임감을 갖고 일했지만 온라인 상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낀 것 같다고 주변 동료들은 말했다.

B씨는 "100통 넘게 이어지던 민원 신고가 조금씩 줄어들면 우리끼린 '고생했다' '우리가 움직여서 그런거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그런데 외부적으로는 신상을 공개하는 글이 올라오니까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공무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며 "하인, 노예 취급을 하고 잘하면 본전, 못하면 쥐 잡듯이 잡는다"고 했다. 이어 "다들 현상 유지만이라도 하자 이런 분위기가 퍼져있다"며 "키워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김포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
A씨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30대 후반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늦깎이 신입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외동 아들로 새 직장에서 묵묵히 업무를 해내던 성실한 이로 전해진다.

동료들에 따르면 A씨는 민원 스트레스로 평소에도 부서를 옮기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박봉에 업무 강도는 높다보니 일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최근 A씨와 함께 일하던 직원 역시 이번 사고 충격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날 김포시청 앞에는 A씨를 추모하는 분향소도 열렸다. "젊은 공무원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 등이 적힌 근조화환 25개가 줄지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50여명의 동료,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직원들은 "죄송합니다" "세상 높은 곳에서 영면하십시오"라는 글을 남겼다.

2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김모씨는 "참담한 심정"이라며 "공무원은 전반적으로 업무 쏠림도 심하고 인수인계도 잘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포에 거주하는 시민 강모씨 역시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안 좋아서 찾아왔다"며 "악성 민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무너뜨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신상을 퍼나르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포시는 온라인 커뮤니티 누리꾼들을 경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송득범 법무법인 영진 변호사는 "공무원 이름과 업무 연락처는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처벌은 안될 것 같다"면서도 "악플을 달면서 허위 사실을 유포했거나 진실한 사실이라도 비방 목적으로 했다면 명예훼손으로 처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병수 김포시장은 머니투데이와 만나 "이런 상황에서도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시청 직원들이 공직자의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며 "공무원이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건 맞지만 과도하게 공적관계에서 불만을 가지고 신상을 유포하면 '우리는 누가 지켜줄 거냐'는 정서가 있다"고 했다.

김 시장은 "1800명 김포시청 전원과 카카오톡으로 1대1 대화방을 만들어 언제라도 고충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며 "결국 시장이 직원들 지킨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했다.

김포(경기)=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서울=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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