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으면 오지마”日, 외국인에 관광세 걷는다
코로나 비상사태 해제 이후 일본을 찾는 외국인이 급증해 교통 혼잡, 쓰레기 공해 등 문제가 발생하자 일본 지방 도시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돈을 더 물리는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비용을 늘려 관광객 유입을 통제하는 동시에 지방정부 수익도 챙기겠다는 계획이다. 외국인에게 별도의 숙박세(稅)를 징수하거나 관광지 입장료를 올려 받는 방식이 거론된다. 일본 방문 외국인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한국인의 부담이 특히 커질 전망이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일본 오사카부(府) 지사는 지난 6일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오버투어리즘(관광 과잉 공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앞으로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 징수금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오사카는 지역 내 호텔 등 숙박업소에 머무는 내·외국인 모두를 대상으로 이미 1박당 최대 300엔(약 2700원)을 걷는 제도를 2017년 도입했는데, 여기에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부담금을 더하겠다는 뜻이다. 금액과 징수 방법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몰리는 관광객의 비용 부담을 늘리려는 움직임은 일본 전역에서 확산하는 중이다. 도쿄도(都)도 숙박세 인상을 논의하고 있고 디즈니 리조트(디즈니랜드·디즈니시)가 있는 지바현 우라야스시 또한 내년을 목표로 숙박세 인상안 논의를 시작했다. 환경 훼손 우려가 커지는 도쿄 인근 후지산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오르는 등산로(요시다 루트) 이용자에게 2000엔을 추가로 거두기로 했다.
중국인 단체 관광까지 재개돼 도시가 포화되자 오사카는 외국인에게 추가로 숙박 부담금을 걷어 이를 거리 청소 등의 비용으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오사카는 내년 ‘오사카 엑스포(만국박람회)’가 열리고 2029년 일본 최초의 카지노가 들어설 통합형 리조트 건설을 앞두고 있어 관광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오사카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일본 도시이기도 하다.
일본 ABC TV는 오사카의 외국인 대상 관광 추가 징수금에 대해 “외국인들에게만 돈을 징수하는 것이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지, 또 일본에 사는 외국 국적 거주민들은 예외로 할 것인지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또 “징수한 금액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투명성이 보장돼야 반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FNN)이란 지적도 나온다.
일본 최초로 2002년에 1박당 최대 200엔의 숙박세를 도입했던 도쿄 당국 또한 지난해 10월 “관광 진흥에 필요한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 숙박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고이케 유리코 지사에게 제출했다. 당시 고이케 지사는 “숙박세를 둘러싼 상황이 도입 당시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며 사실상 숙박세 인상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도쿄에도 오사카와 비슷한 추가적인 숙박 부담금이 더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일본 관광 명소인 디즈니 리조트가 위치한 우라야스시도 내년을 목표로 숙박세 도입 논의를 위한 외부위원회를 조만간 꾸리기로 했다. 우치다 에쓰시 우라야스시 시장은 지난달 8일 기자회견에서 “디즈니 리조트가 있는 지역에 관광객이 급증해 기반 시설 정비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밖에도 미야기현 센다이시, 시즈오카현 아타미시, 아이치현 도코나메시,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 아키타현 아키타시,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나가노현 하쿠바무라 등이 최근 숙박세 도입 논의에 돌입했다. 현재 일본에서 숙박세 제도를 도입한 지역은 도쿄·오사카·교토·가나자와 등 9곳인데 향후 최소 17곳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일본 여행 전문 매체 트래블저널은 “인바운드(외국인 국내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전국 각지로 숙박세 논의가 확산 중”이라고 전했다. 최정자 동국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유럽 등 관광 선진국들은 일찍이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숙박세 같은 사실상의 ‘관광세’를 운영해 왔다”며 “당장은 관광객들의 비용 부담으로 직결돼 반발이 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관광 소득을 지역에 환원하고 환경 보전 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 인기 관광 도시를 중심으로 (관광세) 도입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도쿄 인근의 유명 관광지이자 일본 최고봉인 후지산은 오버투어리즘 문제 해소를 위해 통행료를 새로 도입할 방침이다. 코로나 종식 이후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하루 3000명이 넘는 등산객이 몰려 쓰레기 무단 투기, 노상 흡연 등 민원이 급증한 데 따른 조치다.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현 의회는 지난 4일 후지산 등산로 중 난도가 가장 낮아 외국인이 특히 많이 몰리는 ‘요시다 루트’에 1인당 2000엔씩 통행료를 걷기로 하는 조례를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후지산은 현재 등산객들이 자율적으로 내는 형식의 ‘보전 협력금(1인당 1000엔)’을 받고 있어, 등산객 부담금은 최대 3000엔으로 오르게 됐다. 추가 통행료는 7월부터 징수한다. 야마나시현은 7~9월에만 통행료를 통해 3억엔 정도를 거둘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후지산에 강제 통행료 제도가 도입되는 데 대해 일본 내에서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나가사키 고타로 야마나시현 지사는 “라멘(라면) 한 그릇 값도 2000엔인데 후지산의 가치가 그렇게 낮진 않지 않으냐”며 “2000엔을 부담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등산 환경을 조성하는 게 목적으로, ‘쌀수록 좋다’는 생각을 삼가줬으면 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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