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세 남자 이야기

신승건 부산 연제구 보건소장 2024. 3.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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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떠난 의사들
사회에서 받은 혜택 공동체에 대한 책무, 외면 말기 당부하며
신승건 부산 연제구 보건소장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다. 학창 시절 세 번의 심장 수술을 받았다. 종종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했다. 살고 싶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이 뛰고 있나 확인했다. 아직 뛰고 있었다.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자신을 살려준 의사들이 고마웠다.

여기 또 한 남자가 있다.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것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길이라 믿었다. 꿈을 좇아 의대에 들어갔고 의사가 되었다. 전공을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외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 마지막 한 남자가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무원이 되었다. 주위에서 뭐 하러 박봉인 공무원을 하려고 하느냐면서 뜯어말렸다. 그는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것. 그는 두 번째 길을 택했다.

아팠던 남자와 아픈 이들을 살리고 싶어 한 남자, 그리고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또 한 남자. 세 남자는 ‘신승건’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다.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환자이고, 의사이며, 동시에 공무원이다. 그렇기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공무원과 의사의 힘겨루기, 그 와중에 치료받을 곳을 헤매는 환자와 그 가족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에서는 분노와 연민, 그리고 무력감이 교차한다.

지난 월요일, 나는 심장 정기 진료를 받기 위해 대학 병원을 찾았다. 선한 인상의 교수는 전공의들이 모두 병원을 떠났다며 미안해했다. 나는 교수에게 부디 건강 잘 챙기라는, 서로 역할이 뒤바뀐 듯한 당부를 하고 진료실 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을 열고 의사들만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정부의 법적 조치가 시작되자 이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었다. 병원을 사직할지 말지, 계약할지 말지를 선택할 자유, 이른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게 말이 되느냐고.

미국의 법학자이자 대법관이었던 올리버 웬들 홈즈는 “당신의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다른 사람의 코 앞에서 끝난다”고 말했다. 병원에 치료할 환자를 두고 떠난 것을 정당화하는 의사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일시에 병원을 떠나면 거기에 남겨진 환자들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나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할 때 그것은 유보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해보자. 지금 이 시간 수 많은 청년이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들은 인생의 황금기에 자유를 박탈당한 채 그 고생을 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이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의무를 저버릴 때 처벌하는가. 그들이 집에 두고온 가족, 더 나아가 한 번도 본적 없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병원을 나선 의사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수혜자 중에는 바로 그 의사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들. 그것은 의사의 수입이 다른 직종 근로자의 그것보다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특유의 고집스러운 태도 때문도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독점적 권한을 가졌음에도 그에 합당한 책임은 외면하는 일부 의사들의 마음가짐이 진짜 이유다. 우리 의사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우리 의사들이 자초한 것이다.

17년 전, 의사 고시에 합격했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방에서 컴퓨터로 합격 확인을 한 뒤에 거실에서 신문을 넘기고 있던 아버지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아들이 의사가 되었다는 말에 기뻐할 만도 한데, 아버지는 섭섭하리만치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의사 판사 검사…. 사람들이 선망하는 이 직업의 공통점이 무언줄 아느냐?” 갑작스런 질문에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아버지는 묵직한 답을 주었다. “누군가의 고통이 그 직업의 존재 이유라는 점이다.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거라.”


병원을 나선 의사들은 우리가 선택한 이 직업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되새겨 보길 바란다. 지금은 의사라는 직업이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전부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환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또한 의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의사로서 일하는 동안 이 사회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무가 있다. ‘세 남자 이야기’는 곧 우리 의사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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