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공천 둘러싼 싸움판, ‘반쪽 민주주의’가 원인
지난 몇 달간 각 정당별로 벌어진 공천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거의 막바지인 것 같다. 국민들이 참아 내느라 고생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고생은 선진국 국민 중 사실상 우리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왜 우리 국민만 고생할까?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정말 중대한 한 가지 흠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흠인가?
그 답은 같은 대통령제 나라인 미국과 비교해 보면 금방 나온다. 미국의 정치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간단하다. 그 나라 정치에는 치열한 경쟁은 있지만 우리 같은 ‘싸움질’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공천을 둘러싸고 우리 같은 싸움판, 걸핏하면 비명과 아우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두 나라의 무엇이 다르기에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그곳에는 정치의 모든 분야에 소위 ‘민주주의’의 모든 요소들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그 조직의 ‘진짜 주인’으로 하여금 ‘진짜 주인 노릇’ 하게 하는 것 아닌가? 나라의 ‘진짜 주인’이 국민이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뽑게 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원칙은 공천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그럴 때 그 나라가 진짜 ‘민주 국가’가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공천 과정이란 어떤 것인가? 미국의 공천 과정은 진짜 ‘민주주의적 과정’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간단하다. 민주주의의 대원칙, 즉 ‘주인’으로 하여금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정당의 각 지역구 주인은 누구인가? 바로 그 지역의 당원들 아닌가? 그들로 하여금 진짜 ‘주인 노릇’ 하게 하면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 지역 당원들로 하여금 무기명 비밀투표로 그 지역구 공천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된다. 그것이 ‘진짜 주인’ 이름에 합당하게 대접하는 모습이다. 그러면 어떻게 공천을 둘러싼 ‘갈등’ ‘분노’ ‘싸움판’ 같은 것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미국의 공천 과정은 평화롭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공천 제도는 반민주적, 반상식적인 제도이다. 정당의 보스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공천을 하는 이 나라의 관습과 제도들은 정당의 진정한 주인들로부터 당연히 향유해야 하는 권리를 강탈하는 행위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국민들은 세계 선진국들의 민주 시민들 중 가장 불쌍하고 처량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이 실정을 알게 되는 미국의 정치학자, 정치인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잘 도입해 온 나라가 유독 정치 분야에서 이렇게 후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 중 가장 흔한 것은 이것이다.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그런 짓을 하면서 어떻게 ‘민주주의’ 한다고 할 수 있는가”이다. 즉 “그런 대접을 받는 ‘국민’을 어떻게 ‘국가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이런 공천 시스템은 단순한 명분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모든 의원들을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정당 보스들의 졸개’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다음 선거·공천을 생각해야 하는 의원들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역구민, 즉 국민들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4년간 보람 있게 일하는 미국 의원들의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오로지 보스의 눈에 들어야만 다음 공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우리 의원들의 때로 비굴하고 때로 처량한 모습은 전형적인 ‘졸개의 모습’이다.
그런 우리 의원들을 보고 있으면 이중적 감정이 든다. 시키는 대로 투표만 하면서 수십 개에 달하는 특전을 누리며 4년간 폼을 잡는 그들에 대한 부러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동량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는 없이 정당 보스를 섬기느라 여념이 없는 그들의 비굴한 모습을 보면 참 마음이 착잡해질 때가 많다.
그렇다면 그것이 국정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에서 여당 의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 여당 의원들은 그런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다음 공천을 생각해야 하는 그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공천을 생각하며 묵묵히 ‘졸개 노릇’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뜻이 국정에 반영되기는 어려워진다. 결국 이 나라는 ‘국민의 뜻’보다 ‘보스의 뜻’이 우선 반영되는 그런 제도를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의원의 가장 신성한 임무는 지역구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우리 국민은 정치적으로 선진국 국민 중 가장 ‘불쌍한’ 국민이다. 이 모든 불행의 핵심 요인이 바로 이 나라 공천 시스템이다. 정당 당원들로부터 그들의 ‘고유 권한’을 빼앗은 것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이 나라 헌법을 기초한 분들의 착각이 초래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적당히 섞은 모델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혼합’ 모델이었다. 그 의도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마치 남자와 여자를 혼합한 ‘제3의 성’을 탄생시키려고 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필연적으로 모순을 야기했다. 대통령제인데도 정당이 대통령을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눈치를 보는 상황을 부른 것이다.
우리가 ‘진짜 민주주의’를 정말로 염원한다면 이 근본 틀을 바꾸는 것도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이 문제투성이의 정당별 ‘공천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는 ‘반쪽 민주국가’이다. 이제 ‘진짜 민주정치’의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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