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한국인의 애목 소나무가 사라진다, 재선충방제 기로에
방치하면 국내 송림 78% 사라질 수도
일본 방제 포기, 자연상태 소나무 멸종
송림, 국내 산림면적 27.5%, 71조 가치
천적이용 등 획기적 방제방법 개발해야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38%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꼽았다. 2위 단풍나무(17%)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1년간 107만 그루의 소나무가 말라죽었거나 베어졌다. 자연사가 아니라 병에 걸려서다. '소나무 암'이라 부르는 재선충병이 영남권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재선충병은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라는 곤충에 기생하는 재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해 양분을 차단하면서 나무가 누렇게 말라죽는 병이다. 재선충이 일단 나무에 침입하면 손쓸 재간이 없다. 치료약이 없다. 재선충병에 걸리면 100% 죽기 때문에 소나무 암이라고 한다. 산림청과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방제에 나서고 있지만 확산 세를 꺾을 수 있을지 기로에 선 상황이다.
◇기선 잡았다가 소홀히 한 틈에 재확산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재선충병 피해 나무는 2020년 30만 그루에서 2022년 107만 그루로 증가했다. 2년 새 3배가 늘었다.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국내 첫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2014년 218만 그루로 정점을 찍고 2020년 30만 그루까지 감소하더니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현재 영남권이 가장 피해가 크다. 경북 구미·포항·안동·경주, 대구 달성, 울산 울주, 경남 밀양 등에 전국 피해의 60%가량이 몰려있다. 근년 재선충병이 다시 기승을 부린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지구 기온 상승으로 재선충의 숙주인 솔수염하늘수와 북방수염하늘소의 활동 시기가 빨라지고 활동기간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통 솔수염하늘소는 4월 중순에 우화(羽化, 번데기에서 날개 달린 성충이 되는 것)하는데, 온난화로 이 시기가 6일정도 빨라졌다. 성충이 날아다니면서 재선충을 퍼뜨리기 때문에 방제는 번데기 상태인 10월부터 4월 초순에 이뤄진다.
둘째, 방제의 긴장을 늦춘 것이 치명타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벌채와 약제 살포 등 방제작업이 크게 줄었다. 한때 200만 그루 이상으로 확산했던 병세가 누그러지자 방제작업을 소홀히 한 데도 원인이 있다. 방제 예산은 자연히 줄어들었다. 올해도 산림청의 방제 투입비용은 당초 1700억원에서 80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산림과학자들은 현재와 같은 확산세를 방치할 경우 10년 내에 국내 송림의 78%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재선충 방제는 기로에 놓였다. 예산을 확충하고 더 적극적으로 방제에 나서지 않으면 확산세를 잡지 못한다. 일각에선 일본처럼 방제를 포기하자는 제안도 한다. 자연에 맡기자는 것인데, 국내 식생상 소나무가 사라진 산림이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은 재선충병 방제를 포기해 사실상 자연상태의 소나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소나무 자리를 삼나무(스기나무)가 차지해 건강한 산림생태계를 확보했다.
◇소나무의 경제적 문화적 정서적 가치
소나무는 우리 산림 면적의 27.5%를 차지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목재와 경관적 가치, 산사태 방지 등 공익적 경제적 가치가 연간 71조원에 이른다. 정서적 문화적으로도 한국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인에겐 눈만 뜨면 소나무가 들어온다. 우리 전통민속에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쳤는데, 거기에 여아의 경우 소나무 가지를 끼웠다. 송편과 송홧가루, 송진은 우리 생활에 소나무가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말해준다. 애국가에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며 소나무가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사시사철 푸르러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통해왔다.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단지 약제를 주입하고 감염목을 베어내는 데서 나아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생리를 연구 분석해 천적을 통해 제거하는 방법도 더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소나무는 한국인에게 행복과 풍요를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그 무형의 가치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획기적 방제 방법은 없나
일단 약제 투입으로 재선충 침입을 최대한 막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미 재선충이 침입한 나무에는 소용이 없다. 따라서 건강한 나무에 투입한다. 일종의 예방주사인 셈이다.약제는 아바멕틴 유제와 에마멕틴벤조에이트라 유제로 나무의 크기에 따라 가슴 높이에 구멍을 뚫고 구멍 당 5㎖의 약제를 주입한다. 천공은 키큰 성목의 경우 30개까지 뚫고 약제 주입량도 150㎖까지 늘릴 수 있다.
나무에 약제를 살포하는 방법도 있다.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가 우화하는 시기인 5월과 8월 사이에 맞춰 페니트로티온과 티아클로로프리드라는 약제를 물과 500~1000배 희석해 살포한다. 동력 분무기를 이용해 잎과 줄기에 약액이 골고루 묻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약제 투입과 살포는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매개충과 재선충에 직접 약액을 접촉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방제는 감염목을 통해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염된 나무를 신속히 격리하는 방법을 쓴다. 베어낸 나무를 훈증처리해 나무 속에 있는 유충을 살충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때 벌채 대상은 조금이라도 감염이 의심되는 나무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기껏 벌채 방제를 했는데, 감염목이 남아있어 하나마나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약제와 격리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매개충이 번식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의 생리를 철저히 파악해 천적을 발견하거나 번식을 못하도록 고리를 끊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직 전 세계적으로 효과적인 생물학적 방제 방식이 개발된 예는 없다.
다만 2016년 국립산림과학원 등의 연구진이 가시고치벌이 솔수염하늘소 애벌레 표피에 알을 낳는 것을 발견했다. 이 알이 애벌레의 체액을 빨아먹고 자라는데, 애벌레 한 마리당 가시고치벌 최대 5마리를 생육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시고치벌이 자라면서 체액을 잃은 솔수염하늘소 애벌레는 죽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가시고치벌을 대량 배양시켜 살포하는 방법이 아직 여의치 않아 실제 대규모 활용까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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