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 1000명을 충원할 수 있을까[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2024. 3. 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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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의대생들이 대거 휴학계를 내 올해 1학기가 시작됐으나 의대 강의실은 텅 비어 있다. 독자 제공
“의대 2000명 증원 좋다. 학생들 가르칠 기초의학 교수 확보도 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임상교수를 확보할 건가? 아무리 정부의 의지가 강해도 이건 쉽지 않아 보인다.”

의료계 원로 교수들은 필자에게 의대생들에게 꼭 필요한 의대 교수는 제대로 교육 훈련을 받은 임상교수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많은 의대 교수도 비슷한 걱정을 토로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기초의학은 생리학 생화학 약리학 해부학 등 의학 학문의 기초를 다루는 과목이다. 기초의학 교수의 경우 최근 의대 졸업자가 거의 지원하지 않아 의사가 아닌 생물학 화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 전공 교수들로 많이 채워진 상황이다. 따라서 기초의학 교수의 확보는 의학과 출신이 아닌 교수들로 채울 수 있다. 물론 의대 출신이 기초의학 과목을 맡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주요 과목을 다루는 임상교수 확보다. 정부는 지방 거점 국립대 의대 교수를 앞으로 1000명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임상 쪽 의대 교수가 되기 위해선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전임의 2년 등 군대 시기를 제외해도 13∼15년의 교육을 받은 의사가 필요하다. 동시에 석사 이상의 학위를 통해 교육과 연구 경험도 있어야 한다. 레지던트와 전임의를 했다고 바로 의대 교수로 임용될 수 없는 것이다.

또 의대 교수의 자격 요건인 연구 경험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의학실습을 지도하는 차원이 아니라 직접 연구 과제를 정해 동물실험 및 본인의 임상 데이터를 종합해 이를 해석하고 논문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또 수시로 국제 논문을 취합해 이를 교육과 연구에 연계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서울대병원은 10년 이상 임상을 한 의사에게도 교수 자격을 함부로 부여하지 않는다. 정교수가 되려면 학교에서 요구하는 양질의 논문 생산 능력을 입증해야 하고 엄격한 인사위원회 심사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일본과 독일에선 교수가 과별로 소수에 불과할 정도로 엄격하다. 단순히 원한다고, 혹은 필요하다고 교수를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와 의사단체의 충돌 이후 전임의(펠로)들이 줄줄이 사직하고 있어 임상교수 확보가 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더라도 의대생들이 예과 2년을 거치는 동안 양질의 교수 1000명을 확보해야 하는 비상 상태에 마주치는 것이다. 양질의 의대 교수가 확보되지 않으면 중증 질환 임상 및 연구 경험이 거의 없는 개원의들을 대상으로 교수 확보에 나서야 한다.

특히 지방대의 경우 갑자기 두 배 이상의 정원을 뽑는 상황에서 강의실 확보는 물론이고 커대버(해부용 시신)를 활용한 해부학 실습 등 의대에서 제대로 진행돼야 할 교육이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 등으로 많은 의대는 내년도 증원 규모를 놓고 대학본부와 갈등을 빚었다. 의대 교수들은 지금도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게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부는 어떤 식이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추진하겠다며 가속도를 내고 있다. 강의실과 실험 기자재 등 하드웨어 지원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교수 등 인적 자원은 1, 2년 지원한다고 배출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의대 교수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 지방대 의대 교수는 “정부는 교수 정원을 늘리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최신 F-35 전투기를 수입하면서 동시에 조종사를 확보하려고 내년부터 공군사관학교 입학생을 늘리는 것과 같다”면서 “시차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군사관학교 정원을 늘려도 공군 파일럿이 되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나마도 금방 민간 항공사로 빠져나간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제대로 교육 받은 의사들에게 진료와 수술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 가다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의사가 청진기를 들고 환자 앞에 앉을까 봐 걱정이 앞선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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