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의미가 재배치된 현재까지 여전히 존재하는 ‘하인’[책과 삶]
하녀
소영현 지음
문학동네 | 276쪽 | 1만8000원
한국문학연구자 소영현은 “근대 이후의 삶에 대해 우리가 하는 커다란 오해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삶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착각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란 이전의 물질적 일상의 폐기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가 재배치된 일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녀’란 1960년대 한국영화에 나온 뒤 사라진 존재로 여겨지지만, 소영현은 달리 본다. 그는 “법률적으로 신분제가 해체된 근대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하녀의 위상을 가진 이들이 사라진 적은 없”다고 적는다.
베이비시터, 요양보호사, 등하원도우미가 유모, 침모, 식모, 안잠자기, 어멈을 대신한다. 전 지구적으로 살펴봐도 ‘하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백인 중산층 여성이 사회에 진출한 사이 흑인 여성이 그들의 가사노동을 떠맡았고, 이후엔 ‘세계화의 하인들’이라 불리는 필리핀 여성들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흑인 여성, 필리핀 여성의 가사와 돌봄은 누가 떠맡나. 한국에서도 1920~1930년대 젖어미나 유모로 남의집살이를 하던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잃는 비극이 많았다. “남의집살이 여성이 겪는 직업적 고충에는 두 가정의 위계화 즉 계급적 위계 문제가 은폐되어 있다.”
전근대, 근대, 탈근대를 막론하고 ‘대체 불가능한 노동’을 했음에도 하녀는 종종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됐다. 하녀는 작게는 푼돈을 훔치거나 심각하게는 영아 살해에 연루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 같은 범죄의 배경에 있는 하녀의 상태는 주목받지 못했다. 하녀가 유독 비정하고 표독해서가 아니라 가난, 성폭력 등의 요인이 있었음을 저자는 밝힌다.
소영현은 황정은·염상섭·박태원·권정생·공지영의 소설, 이효재·낸시 프레이저·이반 일리치의 연구, 옛 신문 기사를 활용해 ‘어디든 있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녀들을 위한 명명식’을 거행한다. 지금 하녀를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노동시장이 작동시키는 젠더적 차별화 논리의 비판적 검토”이자 “역사가 삭제한 하위주체의 복원 시도”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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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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