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했던 풀밭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뒤바꾼 호박벌의 용기[그림책]
꽃들의 속삭임
데나 세이퍼링 글·그림 | 이제순 옮김
라임 | 56쪽 | 1만6800원
열린 창문으로 향긋한 내음이 들어온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봄꽃 향기다. 봄이 되면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꽃들은 긴 겨울을 견딘 인간을 위로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꽃들에게는 위로를 주는 존재가 있을까. 꽃으로부터 위로받는 존재는 과연 인간뿐일까. <꽃들의 속삭임>은 이런 상상 위에서 피어난 그림책이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밭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꽃들로 발디딜 틈 없이 채워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원래 꽃 몇 송이가 전부였다. 꽃들은 외로웠지만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풀밭 가장자리에 자리한 늪에 괴물 같은 식물들이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식물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 서서 풀밭으로 들어오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겁을 줘 쫓아버렸다.
황량했던 풀밭에 변화가 생긴 것은 어느 날 아기 호박벌이 찾아오면서다. 작은 아기벌에겐 보금자리와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외로웠던 꽃들은 아기 벌을 다정하게 맞이한다. 부드러운 잎사귀나 꽃송이로 겹겹이 따스하게 품어준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 준다.
베아트리체는 꽃술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꿀을 마음껏 마시며 무럭무럭 자란다. 오래지 않아 베아트리체는 붕붕 날 수 있게 된다. 꽃의 말도 배운다. 부쩍 자란 베아트리체가 늪으로 갈까 걱정한 꽃들은 경고를 한다. “늪 쪽으로는 절대 가선 안 돼.”
풀밭의 꽃들 사이를 오가며 꽃의 말을 전하던 호박벌은 생각한다. ‘어쩌면 그 괴물 같은 식물들은 다정한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서 그럴지도 몰라!’ 호박벌의 용기는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책에는 국화, 금잔화, 백합, 튤립 같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다. 감각적인 연필화로 수놓인 책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마치 봄내음이 나는 듯하다. 호박벌의 신비로운 여정은 보는 이에게 인간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알아주는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마디는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캐나다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니들 펠트 공예가인 데나 세이퍼링이 쓰고 그렸다. 그는 자신의 작은 정원에 엄마를 위해 작약과 할머니를 위해 물망초, 아이들을 위한 수선화를 심었다. 과연 ‘식물 덕후’의 책답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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