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속 ‘공공기여 노인요양센터’ 반대만이 답인가?
전문가들 “고령화 시대,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치 높일 수 있어”
“용적률 높여줄 테니 노인요양시설 지어라” vs “집값 떨어지게 치매시설이 웬 말이냐”.
최고 65층 높이, 2400여가구로 추진되는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재건축 사업장. 기부채납(공공기여) 시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조합 간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졌다. 노인요양시설을 들이라는 서울시와 이에 반대하는 소유주들이 맞서면서다. 결국 시범아파트 내 노인요양시설 건립은 사실상 좌초됐다.
인근 중개사 A씨는 “아무래도 집값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고 치매노인 재활시설이라니 반기지 않는 분위기”라며 “주민을 위한 문화시설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공공돌봄을 강화하기 위해 기부채납 시 노인요양시설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 분위기는 정반대다.
7일 경향신문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서울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공공기여분으로 노인요양시설 도입이 결정된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총 7곳뿐이다. 공공기여는 지자체가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개발 과정에서 혜택을 주는 대신 공공을 위해 필요한 시설을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기부채납으로 노인요양시설을 우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그 뒤로 실제 노인요양시설이 공공기여로 결정된 단지는 상계5구역, 개봉3구역, 장위8구역 등 3곳에 불과했다. 장위8구역이 공공재개발로 추진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간 사업장 중에선 2곳만이 노인요양시설 공공기여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활발한 강남 3구에선 단 한 곳도 없다.
통상 공공기여 시설은 주민들이 일차적으로 의견을 수렴해 입안권자인 구청에 계획안을 제출하면, 구청이 검토 과정을 거친 뒤 도시계획위원회(도시위) 심의를 통해 결정한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경우는 조합 측이 ‘노인여가시설’을 제안했는데 도시위가 이를 데이케어센터, 즉 치료가 포함된 시설로 결정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규제를 대폭 완화해 재건축·재개발을 촉진하는 기조에서 무작정 시범아파트와 대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기서 데이케어센터를 안 하면 다른 곳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 향후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노인요양시설의 공공기여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중앙치매센터 기준 전국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는 2021년 약 89만명에서 2060년엔 346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요양시설은 도심 구석에 밀려나 있다”며 “아파트 단지 안에 노인을 보살피는 시설이 있어야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도시위원은 “새로 재건축되는 단지는 최소 50년 이상은 추가 재건축 없이 유지될 것”이라며 “고령화 추세에서 어떤 형태로든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 필요한 만큼, 장기적 판단으로는 단지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입주가 시작된 수색13구역 단지의 노인요양시설이 오는 5월 개장하면 서울에서 최초 사례가 된다. 기부채납으로 노인요양시설이 추진된 동작구 흑석9구역 주택재개발조합 관계자는 “고령화사회고 노인 문제도 시급한 만큼 요양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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