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시절부터 이어진 기업 블랙리스트, 쿠팡은 학습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활동가 2024. 3. 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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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블랙리스트 사태] 플랫폼 노동과 블랙리스트인권적 의미과 과제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1983년 성남 고려피혁의 노무관리자 책상에서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었다. 다섯 묶음 서류철에 노동운동가를 비롯한 총 763명의 이름, 생년월일, 해고일자, 사진 등이 필사본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후 인천 세창물산 등에서도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었고 명단에 오른 노동자들은 취업한 회사에서 실제로 해고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 철폐운동을 전개하였지만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금호상사 전산실에서도 전국 해고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단체 8000여 명의 명단이 입력된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었다. 노동자를 길들이거나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하여 기업이 때로는 국가기관과 야합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배제하는 악의적 관행은 이처럼 유래가 깊다.

이 때문에 정치 민주화가 진전된 후 1989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될 때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현재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구시대적 관행처럼 보이는 블랙리스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는커녕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타고 더욱 활개 치는 모양이다. 2013년 대형마트 이마트가 소속 전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사찰을 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을 때는 인터넷 홈페이지가 악용되어 충격을 주었다. 당시 이마트는 직원 면담 등을 통해 확인한 정보를 취합하여 노동조합 활동 가능성이 큰 사원을 문제사원, 관심사원, 가족사원, 여론주도사원 등으로 나누고 그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과 친한 직원들, 때로는 연인까지 조사하였다. 이마트는 이렇게 작성된 블랙리스트를 엑셀 문서 등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하였고, 회사가 알고 있는 직원 이메일 정보를 동원해 민주노총 홈페이지에서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기능으로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조회하였으며, 연맹 게시판에 회사 관련 글을 쓴 이를 찾아내기도 하였다.

결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마트는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노동자 블랙리스트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기는커녕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따라 그 대상이 점점 더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21년에는 마켓컬리가 500명 이상의 블랙리스트를 운용하였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마켓컬리는 회사에 불만을 제기한 일용직 노동자 등을 명단으로 만들어서 채용대행업체에 전달하여 사실상 해고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송치하였지만 검찰은 무혐의로 처분하였다. 코로나19 이후 고용이 더욱 불안정해진 일용직 노동자들이 '인력저수지' 물류센터에 몰려드는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이 이들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했지만, 마켓컬리의 취업 방해가 '다른 회사'에 대한 취업 방해가 아니라는 사유가 빌미가 되었다.

▲쿠팡은 6년 간,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 동안 1만 6천 명 이상의 노동자를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취업에서 배제하였다. 알려진 노동자 블랙리스트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연합뉴스

최근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은 단연 그 규모 면에서 충격적이다. 쿠팡은 6년 간,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 동안 1만 6천 명 이상의 노동자를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취업에서 배제하였다. 알려진 노동자 블랙리스트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쿠팡은 처음에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이제는 회사 고유의 '인사평가'라고 주장한다. 이 리스트의 '배제' 목적도 인정하였다. 다만 '선의'로 '인사평가'를 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블랙리스트에 노동조합 활동을 한 노동자들과 쿠팡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인이나 유튜버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명단 자체가 회사에 비판적인 모든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악의적이고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과거의 근로계약을 위해 수집되었던 노동자 개인정보가 장래의 취업 배제용으로 이용된 것은 목적 외 이용이며 회사의 정당한 인사 권한을 벗어난 것이다. 이는 고용관계 목적을 위해 개인정보를 필요 최소한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관련 법률들을 위반하였을 뿐 아니라 헌법에서 보호하는 노동자의 고유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

쿠팡의 악의적 블랙리스트는 어떻게 이렇게 대규모가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플랫폼 노동자의 인권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에는 약 2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갈수록 더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 인형 눈알 붙이기'를 비롯해 더 미세한 플랫폼 노동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취업하여 일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도 크게 침해한다.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몰라도 노동자는 자신이 배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때로 회사는 이런 느낌을 노무관리에 악용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위축시키는 분위기는 노동자가 회사에 순응하도록 만든다. 결국 회사에서 안전 문제나 부당한 대우가 발생해도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이는 또다시 부당한 노동권 침해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앞선 블랙리스트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으니 쿠팡이 이를 학습하여 '관행'으로 만든 형국이다. 플랫폼 노동 환경은 단기 고용 계약과 종료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때 블랙리스트가 단지 '다른 회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방치해야 할까?

플랫폼 기업들은 블랙리스트를 두고 "플랫폼 기업들이 만든 보호 장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이라고 근로기준법의 예외가 될 수 있는가? 우리 사회가 쿠팡 블랙리스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또 얼마나 많은 플랫폼 기업에서 블랙리스트를 배우고 '관행'으로 만들지 모르겠다.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의 숫자만큼, 오늘은 1만 6천 명이었지만 내년에는 16만 명, 또 몇 년 후에는 160만 명에 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블랙리스트가 플랫폼 기업들과 그 하청업체 간에 횡행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모든 플랫폼 기업이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는 날도 올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의 인사 채용도 결국 여러 플랫폼 기업의 외주를 받는 몇몇 채용 하청업체를 통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 역시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만약 근로기준법 조항이 플랫폼 노동자를 법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법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에 종사할 앞으로의 사회에서 고통을 안겨줄 부당하고 조직적인 차별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쿠팡대책위 대표 권영국 변호사(가운데)가 지난 달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법적 대응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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