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 눈치, 면허정지보다 더 무섭다”… 병원 남은 전공의 명단 공개 논란 [의료대란 '비상']

이정우 2024. 3. 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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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복귀 고민 전공의 고충 토로도
충북대의대 교수회 “사법절차 땐 투쟁”
울산시의사회, 울산대 총장 사퇴 요구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도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전공의들에 대해 의사 집단이 ‘색출’작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집단 이탈에 대해 스스로 자발적 행동이라고 말하면서, 2020년 의료계 집단행동 당시 의사들 사이에서 ‘배신자’를 찾아냈던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으로 복귀를 하고 싶어도 이러한 분위기 탓에 복귀를 꺼리는 전공의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 집단이탈이 17일째 계속되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7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와 의대생이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최근 ‘참의사 리스트’가 돌고 있다. ‘참의사’는 병원에 남아 있거나 복귀한 전공의를 비꼬는 말이다. 한 의사 커뮤니티에는 최근 전국 70여개 수련병원 현장에 남아 있는 전공의들의 이름 일부와 소속 과 등의 정보가 적힌 명단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게시물 작성자는 전공의들의 제보를 받아 ‘참의사’ 명단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남아 있는 전공의가 없는 일부 병원은 ‘☆전공의 없는 병원☆’으로 추켜세우고 있다고 한다.

해당 게시물의 댓글에는 “(남아 있는 전공의를) 평생 박제해야 한다”, “검체를 안 떠나는 거냐”와 같은 조롱 글이 달렸다. 검체는 시험, 검사 등에 쓰는 물질이나 생물을 말하는 것으로, 환자를 비하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양아치들 때문에 서로가 망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올라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글에 수십개의 욕설이 달린 댓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수련병원에 남아 환자를 돌보는 교수를 욕설과 교수의 합성어로 보이는 ‘씹수’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후배들의 압박 분위기에 전공의들이 선뜻 병원에 복귀할 수 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지난 6일 직장인 온라인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복귀하고 싶은 전공의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전공의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업무개시명령, 3개월 면허정지보다 제가 속한 이 집단이 더 무섭다”며 “어쩔 수 없이 (집단 사직에) 참여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선후배, 동기들과 3~4년을 지내야 하는데 온갖 눈초리와 불이익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 2020년도에는 ‘선실기’라는 이름으로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동기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을 봤고, 혼자 복귀하면 그렇게 될까 너무 무섭다”고 했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선(先)실기’는 2020년 의대생들이 문재인정부의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했을 때, 실기시험을 치른 일부 의대생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당시 400여명이 실기시험에 응시했는데, 일부 수련병원에서는 이들의 명단을 공유하며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는가 하면 집단 따돌림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 내에서 악성 댓글 공격을 받고, 지금이라도 환자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전공의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다양한 생각을 치열하게 토론하며 폭넓은 사고를 가지고 성장해야 할 젊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를 공격하는 것이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보호하겠다”며 “여러분의 다른 목소리는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고 의료계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방침 등을 두고 의대 교수와 지역의사회 등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충북대의대·충북대병원 교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학생과 전공의들에게 사법절차가 진행된다면 망설임 없이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울산시의사회는 울산대 의대정원 확대 철회와 울산대 총장 사퇴를 요구했다. 울산시의사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울산대가) 기존 정원의 3배에 가까운 증원을 신청했다. 늘어난 정원을 수용하고 충분히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정우 기자, 울산·청주=이보람·윤교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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