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도 빌런도 없지만 [책이 된 웹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

김상훈 기자, 이민우 기자 2024. 3. 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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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
독재보다 어려운 민주주의
그럼에도 지킬 방법 찾기
대체 역사 장르 웹소설에서 어떤 등장 인물은 편리한 독재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민주주의 한계를 지적할 때 사람들은 종종 독일 나치당을 소환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 지형, 당대 사회적 분위기 등을 고려해야 마땅하겠지만, 나치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얻었다는 사실은 명백해서다.

나치당은 1933년 3월 독일 총선에서 43.9% 득표율로 집권했다. 권력을 거머쥔 나치당은 입법부가 행정부에 입법권을 위임하는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인류사에 다시 없을 독재의 시대가 열렸다.

이 때문인지 '만약 히틀러가 없었다면'이란 상상에서 시작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때 민주주의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소재는 아니다. 웹소설에선 히틀러를 제거하고 '그보다는 좀 나은 독재자'가 되는 소재가 많다. 협치보단 '독재'란 키워드를 흥행 장치로 내세웠다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카르카손 작가의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는 다른 결을 지닌 작품이다. 주인공이 히틀러를 축출한 후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또다른 독재'가 아니라 양보와 타협을 통해 민주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이다.

작품은 독일에 관심이 많았던 한국인 윤성일이 1937년 독일 국방군 육군 소위 디트리히 샤흐트로 빙의하면서 시작한다. 디트리히는 스페인 내전에 파견돼 공훈을 쌓지만, 그 과정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되는 모습을 목격한다. 독일 전체가 전범국으로 전락할 것을 염려한 디트리히는 파국을 막고자 발버둥 치기를 결의한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디트리히는 반히틀러 성향 세력 '검은 오케스트라'에 가입한다. 동시에 나치에 반대하는 잔존 세력 등 각계 인사와 연대를 시작한다. 나치가 저질러온 잘못을 시민들에게 알리며 저항 활동을 펼친다. 마침내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면서 독일은 내전 상태에 빠진다.

여러분을 이끌 정부가 잘못됐다면, 따를 이유가 없는 명령만을 강요한다면 (중략)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조국에 대한 충성이 아닙니다. 범죄 정권의 공범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나치 정권의 박해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저들이 보여주는 환상에 열광하며 권력을 넘긴 것은 다름 아닌 모든 독일 국민입니다. (중략) 증오를 부추기며 적에 맞선 전쟁과 복종을 부르짖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위대한 아리아인의 영웅도 아니고, 강력한 국가도 아닌, 바로 여러분의 손으로 끝내야 합니다!
-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 중에서

[일러스트=KW북스 제공]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건 등장인물들이다. 주인공 디트리히는 영웅은 아니다. 대의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위해 싸운다. 자신의 결정이 옳은가를 두고 끊임없이 번민하고 고민한다.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 찬 저 기쁨과 환영은, 과연 정말로 자신들의 손으로 얻어낸 자유에 대한 기쁨일까, 아니면 나와 내 사람들의 선동으로 인한 결과일까? 저들은 진정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을까?
-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 중에서

다른 등장인물들도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각자 욕망하는 것이 있으며 때로 주인공과 대립한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양보와 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젖힌다. 답답할 만한 상황도 매력적인 인물과 긴장감 있는 전개로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는 강력한 한명의 영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화합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작가의 공을 들인 자료조사와 로맨스 묘사도 호평을 받는 요소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도 추천한다.

김상훈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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