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4시간 조사’받고 출국 준비?
서두르듯…공수처, 압수물 분석 미완에 하급자 조사도 ‘요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출국금지한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인 7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불러 조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주호주 대사로 이 전 장관을 임명한 지 사흘 만에 이뤄진 조사로 출국금지 해제를 위한 수순으로 서둘러 조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된 사건 핵심 인물을 윤 대통령이 대사로 임명한 것 자체가 수사 회피를 돕기 위한 목적 아니냐는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해 8월부터 정당과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 외압 의혹’ 수사를 해왔다. 이 전 장관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뒤 임성근 해병대 1사단 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한 것을 부당하게 회수·재검토한 혐의 등으로 고발됐다. 이 전 장관은 공수처가 지난 1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을 압수수색할 무렵 출국금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이 전 장관 인사검증 과정에서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1차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는 출국금지 여부를 확인했는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수사가 6개월 이상 이뤄졌고 공직자 신원조회 때 보통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지 여부, 법무부의 출입국 관련 자료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실과 법무부가 출국금지 사실을 아예 몰랐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사로 임명하기 전에 인사검증을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출국금지 여부는 확인돼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공수처의 이 전 장관 조사가 출국금지 해제를 위한 면피성 조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공수처는 출국금지 유지보다 해제 쪽에 무게를 두고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자체도 속도를 내서 하자는 의견과 민감한 사안이니 총선 이후 하자는 의견이 대립했다고 한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5일 기자들에게 “아무리 고발됐더라도 국가를 대표해 공무로 정식 인사 발령이 나서 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를 잡범처럼 대할 수는 없지 않냐”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공수처는 아직 압수물 분석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이 전 장관의 하급자들을 두루 조사한 상태도 아니라 이날 조사는 요식행위에 가까운 형태로 이뤄졌을 수 있다. 이날 조사는 사건의 복잡성에 비해 상당히 짧은 4시간에 그쳤다. 공수처는 출국금지 해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결정 기관이 아니라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결국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한 것은 공수처 수사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 전 장관이 출국하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출석조사 등을 사실상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이 수사 협조 의사를 공수처에 밝혔더라도 강제성은 없다.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는지 의혹을 규명하는 데 핵심 고리가 되는 인물이다. 박 대령은 지난해 8월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오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VIP(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해병대)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혜리·강연주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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