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숙여 “부탁합니다”…YS의 ‘조용한 보좌관’ 손명순 여사 별세
● YS의 ‘조용한 보좌관’
손 여사는 1929년 1월 2남 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손 여사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3월 6일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YS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 재학 때였다. 당시 이화여대는 재학생의 결혼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손 여사는 주변의 도움으로 첫아이를 낳고도 졸업 때까지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손 여사는 YS 대권 도전에서도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손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1992년 대선에 본인이 직접 전국 유명 사찰과 유력 종단을 방문하며 YS 지지를 호소했다. 또 유세 현장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 시절 공식적인 역할 외에는 조용한 행보를 하던 손 여사이지만,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처음으로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해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를 만나기도 했다.
● YS “가장 잘한 일은 아내를 만난 일”
손 여사에 대한 YS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일화는 많다. YS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손 여사를 “맹순아(명순아), 맹순아”로 불렀다. 손 여사는 “애들도 있는데 왜 자꾸 이름을 부르느냐”고 하면 “내가 안 불러주면 누가 맹순이 이름 불러 주노. 니도 내한테 ‘영삼아, 영삼아’ 해라”라고 농 섞인 말을 했다. 잠자리에 함께 누울 때는 늘 “맹순이 잘 자라” 하며 손을 꼭 잡았다. 동갑내기 아내는 그런 그에게 늘 깍듯한 존댓말을 했다.
YS는 “김영삼의 오늘이 있음은 손명순의 한결같은 사랑과 내조 덕택이었음을 여기서 고백한다”며 “이 자리에서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참으로 고마웠어. 맹순이가 예쁘고 좋아서 60년을 살았지. 사랑하오.”라고 말했고 손 여사에게 입을 맞췄다. 회혼식장에선 YS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손 여사를 “최고의 보좌관”이라고 치켜세우는 내용이 동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YS는 1995년 2월 이전까지의 관례를 깨고 손 여사의 모교인 이화여대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이 국립대나 사관학교가 아닌 사립대 졸업식에 참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YS는 “여러분의 선배 한 분과 가족을 이룬 나도 이화의 가족”이라고 말하며 손 여사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 퇴임 이후 YS 부부는 힘든 나날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위기로 국가가 휘청거린 데다 차남 현철 씨는 재판 중이었다. 손 여사는 2015년 11월 22일 YS 서거 당시 상도동 자택에 머물고 있어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날 아침 소식을 전해 들은 손 여사는 충격으로 손을 떨며 “춥다. 안 추웠는데 춥다”는 말로 상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손 여사는 YS의 서거 직후부터 건강이 악화됐고 평소 타지 않던 휠체어를 탈 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태였다.
7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손 여사는 2022년 1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입원한 뒤 별세 전까지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국민의힘은 이날 애도 논평에서 “손 여사는 평생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셨다”며 “오랜 세월 민주주의 투사로, 야당 정치인으로, 또 제14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버팀목은 65년의 반려자 손 여사”라고 했다. 이어 “손 여사와 김 전 대통령께서 함께 맨땅에서 일궈내 후대에 물려주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긴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8일 애도 논평을 낼 예정이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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