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 선물"…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
[EBS 뉴스]
서현아 앵커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게 더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 부모들은 자녀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이 되기도 하죠.
주말마다 아이와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아빠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며 보내는 시간이 어떤 변화로 이어지는지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
박준영 작가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작가님 어서 오세요.
아이와 산을 오른 지 지금 3년이 되셨습니다.
단둘이 산을 오르게 되신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박준형 작가
아이가 답답한 빌딩 숲을 벗어나 자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도심 속 아파트에 살며 맞벌이를 하는 부모였어요.
더군다나 저는 세종시에서 서울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아빠입니다.
아이가 깊이 잠에 든 이른 시간 출근길에 올라서 퇴근 후에는 겨우 과일 한 조각 나눠 먹고 잠들기에 바빴습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주말마다 산으로 나가며 함께 시작한 등산은 자연에서의 하룻밤을 즐기는 백패킹으로 발전했고, 어느덧 아들과 함께하는 백패킹을 즐긴 지 4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주말마다 아빠와 산을 오르는 시간이 아이에게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아이와 백패킹을 하면서 작가님과 그리고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박준형 작가
처음 산행을 시작하던 무렵의 아들은 다소 내성적이었어요.
수줍음도 많아서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제 뒤로 숨는 아이였는데 자연을 찾으면서 180도 바뀌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산을 오르내리며 마주하는 어른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또 어른들이 대단하다, 기특하다 덕담을 해주면 얼굴이 발그레해지던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라면서 여유 있게 받기도 해요.
저와 아들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로 대화가 통하기 시작했어요.
저 나름대로는 아이와 가까운 아빠라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저만의 생각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했거든요.
대화가 쌓이니 신뢰가 형성되었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저희는 더 돈독해졌습니다.
서현아 앵커
굉장히 의미 있는 변화가 이어졌네요.
그런데 사실 이 스마트폰과 게임기를 내려놓고 아이와 온종일 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그 그렇게 쉬울 것 같지만은 않기도 해요.
이 아이와 산에서 놀이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준형 작가
아이와 산에서는 주로 자연물을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냅니다.
어릴 때는 돌멩이를 모아서 성벽을 쌓고 진지를 구축한다거나 나뭇가지를 주워서 움막을 짓고 전쟁 놀이를 많이 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쳐들어오는 적과 마주 싸우는 고려거란전쟁에 양규 장군이나 강감찬 장군이 되는 역할놀이를 한 거죠.
초등학생이 된 후로는 스포츠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다녀왔던 전라북도 군산에서는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들고 서로 투수와 타자가 되어 야구놀이를 즐기기도 했고요.
얼음계곡으로 빙박을 갔던 강원도 인제에서는 빙판 위에 매끄럽게 생긴 돌멩이를 올려놓고 발로 이리저리 밀면서 얼음 축구를 즐기기도 했어요.
특별한 놀이 방법이 필요했다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해 주는 아빠의 시간과 관심이 아이에게 제일 큰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서현아 앵커
산을 오르면서 또 이 아이가 커가는 모습도 지켜보셨습니다.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준형 작가
얼마 전 세종시의 한 수영대회에 출전했었습니다.
25미터의 자유형 경기였는데 스타트 신호를 놓쳐서 다른 친구들보다 몇 초 늦게 출발했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1등으로 결승점에 도착을 했어요.
경기가 끝난 뒤 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느냐고요.
초등학교 1학년에 저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엉엉 울거나 포기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산에 오를 때면 아빠가 늘 얘기했잖아.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걸을 수 있는 속도로 꾸준히 정상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결승선이 정상이라 생각하고 내가 헤엄칠 수 있는 속도로 갔던 것 뿐이야."
그때 깨달았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산을 오르며 경험한 다양한 성취감이 아이의 자기효능감을 높여주었다는 사실을요.
산을 오르고 자연과 함께하며 아이의 몸과 마음은 건강하고 단단해졌습니다.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자연으로 한 걸음 내디뎠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동안의 시간이 정말 귀중한 선물을 주고 갔네요.
산을 오르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 어린아이와 산에 갈 때 특별히 주의할 만한 부분도 있을까요?
박준형 작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빨간 신호에는 멈추고 또 녹색 신호에는 길을 건너는 거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이 자연을 대하는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eave No Trace!" 줄여서 LNT라고 하죠.
우리 말로 하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백패킹을 할 땐 국립공원이나 독립공원과 같은 야영금지 구역을 피해야 하고 가스나 버너와 같은 화기를 소지해선 안 됩니다.
필요한 식사는 보온병이나 발열팩으로 조리하고 난방은 핫팩으로 대신해야 하죠.
쓰레기를 모두 되가져 내려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는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동일하게 지켜야 하는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그 밖에 아이와 함께하며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부족함 없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에서는 과유불급 말고 과유유급이라고 강조한 부분인데요.
아이와 함께하는 여정을 준비할 때는 무게나 부피에 너무 신경 쓰기보다는 조금 더 넉넉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가령 봄, 여름, 가을, 삼계절에는 땀이 난 후에 갈아입을 수 있는 양말이나 여 옷, 또 마실 물을 여유 있게 챙기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겨울에는 핫팩이나 방한 의류를 계산보다 넉넉히 가져가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 부분도 꼭 신경 써야겠고요.
자녀와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아직 망설이고 계시는 부모님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해 주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실까요?
박준형 작가
제가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에서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선물해 주세요입니다.
아이가 몇 걸음 채 걷지 않고 안아달라며 떼를 쓰기에 산행은 커녕 산책도 쉽지 않다는 분들께 조심스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 아이와 산행을 시작할 무렵엔 저희도 여느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아빠 나 힘들어 언제 도착해.'
이런 얘기를 진짜 수없이 반복했어요.
그럴 때면 잠시 안고 걷기도 하고 등에 업고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정상은 저에게도 아이에게도 적지 않은 보람을 선사했습니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두 걸음이 되고 어느덧 함께 두 발로 걸어오르기 시작한 거죠.
백패킹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일 뿐이에요.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도 좋고 또 섬을 한 바퀴 도는 섬 트레킹도 좋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걸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이렇게 작은 경험이라도 부모님과 함께 또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정말 아이에게 큰 행복이 될 것 같습니다.
작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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