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칼럼] 부동산정책 성공 위한 3가지 심리 코드

2024. 3. 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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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부동산 시장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 시장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한다. 정보 전달 속도 역시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시장 지능도 갈수록 고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고위 인사가 시장의 욕망을 부정하면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보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고지능 집단'인 시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비이성적 투기집단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면 잠시 성공할 수 있으나 이내 시장의 역습에 흔들린다. 시장의 욕망을 무시한 당위의 찬미는 실패로 이어지기 일쑤라는 얘기다. 그래서인가, 한 전직 관료는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기보다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정책을 펴야 효과를 발휘하더라"고 했다.

시장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책은 겉돌기 마련이다.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

첫째, 시장 참여자에게 불이익보다 인센티브를 주는 게 훨씬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헨리 조지의 사상에 '좌도우기(左道右器)'라는 개념이 있다. 진보 지향의 개혁이더라도 방법은 우파, 즉 시장의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애국충정으로 무장한 우국지사들이 모여 만드는 곳이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인다. 사적 이익과 공동체 이익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두 가치체계가 수시로 충돌한다.

개인의 욕망을 최소화하고 공공의 가치에 따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에게 주는 인센티브라는 카드를 쓰는 것이다. 인센티브는 공공의 가치를 따르면서 생긴 손해를 어느 정도 보상하는 방식이다. 인센티브는 당연히 정책의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할 수 있다.

둘째,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수용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생각해보자. 운전자는 멀미하지 않는다. 운전석에서 멀수록 멀미를 심하게 겪는다. 조수석보다 뒷좌석에서 더 멀미할 것이다. 뒷좌석이 아무래도 롤링(rolling)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멀미는 몸이 수동적으로 움직일 때 나타난다. 그런데 자신이 스스로 발동을 걸거나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 장거리 운행하는 고속버스나 트럭 운전기사가 멀미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훌륭한 운전기사는 승객의 반응을 보고 속도를 조절한다.

이처럼 정책은 입법자보다 시장의 수용자 입장을 고려해야 후유증이 적다. 세금도 거두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세금이 벌금으로 읽히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조세 정의도 좋지만 담세 능력을 고려해 충격을 최소화해야 하고, 때로는 탄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와 시장 사이의 신호등이 잘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정책은 시장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다. 메시지의 전달자와 수용자 사이에 중요한 것은 신뢰다. 길가의 신호등을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면 건널목을 건너선 안 되고 파란불일 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대체로 우리나라 도로에서 신호등은 잘 작동되고 있다. 신호에 대한 메시지를 그대로 읽은 결과다. 메시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받아들인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만큼 정보 수용도 이기적이다. 그래서 정책은 그 자체의 성격과 취지만으로는 효과를 알기 어렵다. 시장 참여자들의 '수용 태도'에 따라 약발이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내는 정책을 시장이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책이라는 메시지는 자주 오역된다. 정부가 아파트값이 고점이라는 적색경보 신호를 보내도 집값은 꿈쩍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려면 정부와 시장 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공자도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無信不立, 무신불립)"고 했다. 이 세상에 단박에 되는 일은 없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석탑 쌓듯이 하나하나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이라도 신호등을 손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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