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악성 민원에 숨진 9급 공무원, ‘교사 순직 사건’ 벌써 잊었나
임용된 지 2년도 안 된 지방자치단체 9급 공무원이 지난 5일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주민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의 컴퓨터에는 ‘직장에서 하는 일이 힘들다’는 내용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고 슬프다. 그의 명복을 빈다.
김포시에서 도로 관리·보수 업무 등을 담당한 그는 지난 겨울부터 도로 제설 민원, ‘포트홀(도로 파임)’ 해결 민원, 공사에 따른 도로 교통체증 항의 등을 지속해서 받았다. 그러다 최근 포트홀 보수 공사로 김포한강로 일대에 체증이 발생하자 일부 누리꾼이 인터넷에 그의 신상을 공개하고 비난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그가 숨지기 전날에만 50통 넘는 비방 전화가 사무실에 걸려 왔다고 한다. 도로에 포트홀이 생기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보수 공사를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때문에 도로가 막힌다고 담당 공무원을 힐난하면 되겠는가. 포트홀 보수 공사를 방치하거나 늦추면 또 항의 민원이 빗발쳤을 것이다.
일선 하급 공무원에 대한 폄훼와 악성 민원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 1월 충북 청주시에서는 기초생활수급비가 적게 나왔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폭행한 민원인이 구속됐다. 지난해 7월엔 경기도 세무 공무원이 민원인을 상대하다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 사건이 일어난 게 반년 전이다. 사건 현장에서는 경찰관들이 피의자로부터 조롱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 공무원노조총연맹이 지난해 공무원 706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8명 이상이 악성 민원을 경험했고, 그 행태도 욕설·폭언, 반복 전화, 인격 모독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듯 공무원들은 속수무책이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공무원 1만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감정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악성 민원에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최근 젊은 공무원들의 이직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공무원이 시민 위에 군림해도 안 되지만, 부당하게 짓밟히는 것도 문제다. 정부와 당국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급 공무원들이 모든 민원을 처리하고 책임지다 일할 의욕을 잃는 공직 풍토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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