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에 뒷짐만···굼뜬 '피싱'수사 피해 키워"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에 거액 뜯겨
범죄 조직원 정보 직접 알렸지만
영화처럼 수사기관은 "못 잡는다"
피해액 환수·포상금도 해결 못해
'유명세' 탔지만 울분 가슴에 남아
“제 실화를 다룬 영화가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우디네극동영화제에도 초청됐다니 정말 기쁩니다. 하지만 한국 경찰이 범죄자를 잡는 데 결정적인 단서와 정보를 준 제보자를 홀대하고 무시했다는 사실은 나라 망신입니다.”
영화 ‘시민덕희’의 실제 주인공 김성자 씨는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에 대한 제보를 무시하고, 범인을 잡은 뒤에는 공을 가로챈 경찰의 태도에 아직도 화가 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시민덕희’는 평범한 한 시민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뒤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에 분노해 직접 나서 보이스피싱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내용을 그렸다. 올해 1월 개봉한 이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개봉 3주 차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좋은 흥행 성적을 냈다.
김 씨는 2012년 안전장치가 안 된 한 건물의 2층에서 아들과 함께 추락 사고를 당했다. 아들은 다행히 무사했지만 크게 다친 김 씨는 건물주를 상대로 오랜 기간 소송을 벌였다. 그리고 재판을 앞둔 2016년 1월 검찰청이라며 전화가 걸려 왔다. 소송 상대인 건물주의 건물을 압류해야 하니 비용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을 사칭한 사기 전화였다.
김 씨는 “당시 전화를 건 사람은 나의 소송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기에 보이스피싱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고 진짜 검찰인 줄 알았다”면서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돈을 보냈는데 사기 전화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 전화는 중국에서 온 것이었고 김 씨가 뜯긴 돈은 3160만 원이었다.
김 씨는 당시 보이스피싱 조직이 어떻게 자신의 소송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소송 정보가 경찰이나 검찰에서 빠져나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이런 부분도 철저히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기를 당해 허무함과 울분에 차 있던 김 씨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일전에 김 씨에게 전화로 사기를 쳤던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그런데 그 조직원은 자신도 조직 총책에게 감금돼 협박당하고 있다면서 총책의 실명과 나이, 중국 내 사무실 주소 등을 알려줬다. 총책 얼굴 사진과 보이스피싱 피해자 800여 명의 명단도 보내줬다. 이뿐만 아니라 총책이 곧 한국에 간다는 정보와 함께 출국하는 공항, 날짜, 비행기 탑승 시간도 알려줬다. 총책을 검거할 수 있는 상당한 정보를 김 씨에게 준 것이다.
김 씨는 “그 조직원으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았을 때는 또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것 같아 ‘너한테 줄 돈은 더 이상 없다’며 욕을 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신빙성이 있음을 느꼈다”면서 “조직원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갖고 화성동부경찰서(현 오산경찰서)로 갔는데 경찰의 태도가 정말 어이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이 총책 이름을 듣더니 ‘동명이인이 한두 명이 아닌데 어떻게 잡느냐. 또 총책이 타고 오는 비행기의 항공사와 좌석까지 알아야 하는데 지금 가져온 정보로는 못 잡는다’고 하면서 나를 귀찮다는 듯 대했다”며 “이건 밥상만 차려준 게 아니라 숟가락으로 밥까지 떠 먹여줘야 하는 꼴”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결국 경찰은 김 씨의 제보를 바탕으로 보이스피싱 총책과 조직원 6명을 검거하고 총책으로부터 범죄수익금 1억 8000만 원을 환수했다. 총책이 잡힌 후 김 씨는 사기당한 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내가 뜯긴 돈을 당연히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경찰은 ‘총책에게서 되찾은 돈은 범죄수익금이므로 국가가 환수하기 때문에 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다”며 “이뿐만 아니라 경찰이 평소 홍보했던 보이스피싱 신고 포상금 1억 원도 예산이 없어 못 준다면서 고작 100만 원의 포상금을 제의해왔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제의한 포상금을 김 씨는 고민 없이 거절했다.
특히 김 씨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에 큰 공을 세운 시민을 외면한 경찰의 태도다. 그는 “조직원들이 잡혔을 때 경찰은 피해자 겸 제보자인 나에게는 알리지도 않았고 나중에 뉴스를 본 지인을 통해 범인 검거 소식을 들었다”며 “경찰이 해당 사건 발표를 할 때 시민의 제보로 붙잡았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영화가 흥행한 덕분에 유명인이 된 김 씨는 최근 여러 방송국의 출연 요청에 바빠졌다. 그가 대중 매체에 나갈 때나 지인들과 보이스피싱을 이야기할 때 꼭 하는 말이 있다.
“나처럼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나처럼 경찰에 당하는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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