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정책 못참아"… 망해가던 샌프란 '우향우'
지나친 인권 강조, 공권력 약화
노숙자·마약중독자 넘쳐나
기업 떠나고 관광객은 외면
주민투표로 민생정책 도입
경찰 늘리고 공교육 강화
중도파 정치인 대거 당선도
"유권자들이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더 이상 급진 좌파(Progressive)의 도시가 아니다!"
5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투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지역 언론인 '샌프란시스코(SF)크로니클'이 뽑은 기사 헤드라인이다.
이날은 미국 전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이 치러진 '슈퍼 화요일'이자,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 확정된 날이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관심은 주민투표에 부쳐진 7대 법안과 샌프란시스코 지역 민주당 중앙위원회 선거 결과에 쏠렸다.
이날 투표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샌프란시스코 민심이 이념 대신 '먹고사니즘'을 택했다는 것이다. 7개 법안 중 중도 성향의 정치인들이 내세운 법안은 5개. 이들 5개 법안 중 4개가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도심에 주택 공급을 늘리고, 경찰의 공권력을 강화하고, 마약 복용자에 대한 현금성 지원을 금지하고, 중학교 수학교육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모두 샌프란시스코의 급진 좌파 정치인들이 반대했던 것들이다.
지역 민주당 중앙위 선거에서도 위원 24명 중 21명이 중도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들이 민생을 중시하는 중도 성향 후보라고 지목한 이들이다. 중도 성향 정치단체인 그로SF의 스티븐 부스는 "유권자들은 급진 성향의 샌프란시스코 정치인들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아예 그들에게서 돌아섰다"며 "그들은 실패했고, 이제 우리 도시는 앞으로 나아갈 때"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곳이자 '민주당'의 텃밭인 지역이다. 매년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하는 곳이 샌프란시스코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이 이곳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진보'를 넘어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곳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의 권리와 인종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많아서다.
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정책이 샌프란시스코를 망치고 있다는 불만이 수년 전부터 터져 나왔다.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경찰의 공권력이 약화돼 범죄율이 높아졌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있는 텐더로인 지역은 노숙자들로 거리가 점령되고 마약 거래가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등 악명 높은 지역으로 변했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시내 노숙자 수는 7700명에 달한다. 샌프란시스코 인구가 8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치안이 불안해지자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고 관광객들도 이곳을 피했다. 이처럼 진보 성향 정치인들이 샌프란시스코의 평범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라고 언론은 분석했다. SF크로니클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은 43%로,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35%를 웃돌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내에서도 재산이 있고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클라라 제프리 마더존스 편집장은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진보와 온건이라는 프레임으로 샌프란시스코 정치를 잘못 보는 것"이라며 "주택 건설을 막고 수학교육을 없애는 것은 절대 진보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샌프란시스코의 달라진 민심을 보여주는 예선전에 불과하다. 샌프란시스코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선거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일에 열리는 시장선거다. 중도 성향의 런던 브리드 시장이 재선에 나서는 가운데, 현 시의회 의장인 에런 페스킨도 시장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3월 선거와 달리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결집할 경우 브리드 시장의 재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급진 좌파 성향의 정치인을 몰아내고 온건한 민주당 성향의 정치인을 당선시키는 배후에는 실리콘밸리 테크업계의 부호들이 있다. 블록체인 리플의 창업자인 크리스 라슨, 스타트업 육성기관인 와이콤비네이터의 게리 탄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실리콘밸리 이덕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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