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이종섭 ‘출국용 조사’…“대통령 범인 도피 돕나?”

전광준 기자 2024. 3. 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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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금지 사실 알려진 지 하루 만에 전격 조사
압수물 분석·하급자 조사 전…수사순서 뒤집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15일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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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아무개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전격 출석해 조사받았다. 출국금지된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함에 따라 조만간 출국해야 할 이 전 장관이 출국금지 해제 명분을 쌓기 위해 서둘러 조사를 받으러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장관이 호주 대사로 부임하면 수사 외압 의혹 사건 수사는 사실상 전면 중단이 불가피하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이 주요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것은 사법질서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사실상의 범인 도피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 이대환)는 이날 이 전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해병대 김계환 사령관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하기 직전 이 전 장관 등 핵심 인사들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전날 저녁 이런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직후 전격 이 전 장관 조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날 조사는 정상적인 수사 진행에 따른 조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지난 1월 몇차례에 걸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유 관리관,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국방부 검찰단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아직 포렌식 작업 등 압수물 분석조차 끝내지 못한 상황이다. 공수처는 이번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등에 대한 직접 조사도 아직 하지 못했다. 이 전 장관을 제대로 조사할 증거도, 관계자 진술도 미비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조사가 이 전 대사의 출국금지를 풀어주기 위한 명분 쌓기용 조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공수처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아랫사람부터 수사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윗선인 핵심 피의자를 불러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 통상의 수사 과정”이라며 “심지어 압수물 포렌식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소환조사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소환조사를 했다는 빌미로 출국금지를 해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 역시 “이 전 장관은 마지막에 불러 조사해야 하는 사람이다. 지금 부르는 것은 추궁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다. 출국금지 해제 수순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실제 공수처는 이날 기자들에게 이 전 장관이 출석해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며 “이 전 장관은 앞으로 진행될 수사에도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수사기관의 장은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법무부 장관에게 1개월 단위로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은 출국금지 사유가 없어졌다고 판단되면 출국금지를 해제할 수 있다.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점은 출국금지 해제 사유가 될 수 있다.

이 전 장관이 호주 대사로 부임하면 이 사건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 전 장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넘기겠다’는 해병대수사단의 보고서에 결재한 뒤 하루 만에 이를 뒤집은 장본인이다.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은 “‘브이아이피(VIP·윤 대통령 지칭)가 격노해 어쩔 수 없다고 국방부 장관이 말했다’고 해병대 사령관에게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수사 외압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는지 규명할 핵심 피의자라는 뜻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 전 장관 출국금지를) 알고도 (국외에) 내보내는 것은 (이 전 장관이) 해병대 장병 수사 외압 몸통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핵심 공범을 해외로 도피시키려 한 것이다. 대통령은 이 전 장관 호주 대사 임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법조계에서는 주요 사건 핵심 피의자를 주요국 대사로 임명한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다수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의 주요 피의자 대사 임명은 사법질서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사실상의 범인 도피 행위”라며 “부담스러워도 공수처가 편의를 봐줄 필요가 없다. 원칙적으로 공수처 조사가 필요한 시기까지 출국금지 조처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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