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관극 그만! 마음껏 움직이는 공연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3. 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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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극장 드나드는
'릴랙스드 퍼포먼스' 등장
창작산실 뮤지컬 '키키의…'
수어·터치투어·대본열람도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은
전 회차 '열린 객석' 진행

최근 일부 극성팬들이 다른 관객들에게 일체의 움직임과 소리 자제를 강요하는 '시체관극'이 공연계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예 공연중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릴랙스드 퍼포먼스'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5일까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 무대에 오른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일부 공연을 릴랙스드 퍼포먼스로 진행했다.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할까봐 공연장에 올 수 없었던 장애인이나 감각적·정서적 자극에 취약해 긴 시간 작품을 관람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공연 관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공연 접근성이 약한 취약 계층에게 공연장 문턱을 낮춰주는 배리어프리 정책의 일환이다. 릴랙스드 퍼포먼스는 국내 공연계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실험이다.

한 달의 공연 기간 동안 두 차례 실험적으로 진행된 릴랙스드 퍼포먼스에서는 공연 도중 일부 관객들이 다른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연장을 자유롭게 입·퇴장했다. 다른 관객들 역시 객석을 이동하는 관객에게 불평을 제기하지 않았다. 도중에 공연장을 나갔다 재입장한 20대 관객 A씨는 "저번 공연에서는 관람 중에 트리거(특정 자극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상기되는 것)가 와서 공연장 밖으로 나와 작품을 끝까지 보지 못했는데 이번 공연은 다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져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주인공 키키가 가족과 연인, 상담사의 도움을 받으며 행복을 찾는 이야기를 다룬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가장 발병 빈도가 높은 성격 장애로 만성적인 공허감과 불안감, 잦은 우울감, 불안정한 인간관계 등을 증상으로 한다. 연극은 키키가 자신의 병을 직면하고 용기를 내 세상에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릴랙스드 퍼포먼스에서 신체적·정신적 불편함을 가진 관객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객석 조명을 밝게 했고, 강한 자극을 받지 않도록 음향과 연출을 조정했다. 릴랙스드 퍼포먼스를 기획한 홍지원 프로듀서는 "릴랙스드 퍼포먼스를 포함한 배리어프리에 대해 늘 관심이 있었다"며 "배우들의 동선과 연출, 조명, 음향 등을 다시 짜야 했는데 배우와 연출, 조명디자이너, 음향디자이너들이 적극 협력해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이 있어 추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릴랙스드 퍼포먼스 외에도 특정 회차들에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 시각장애인들이 사전에 무대의 장치들을 만져보는 터치투어, 작품 이해가 어려운 관객을 위한 사전 대본 열람 등의 기회도 제공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작품으로 뮤지컬 '맥베스' 등을 연출한 조윤지가 극작과 연출을, 뮤지컬 '실비아, 살다' 등을 작곡한 김승민이 곡을 썼다.

4월 12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 또한 '열린 객석'이라는 이름의 릴랙스드 퍼포먼스로 전 회차가 진행된다. 공연 중 관객이 자유롭게 입·퇴장할 수 있도록 객석을 열어 두며, 조도와 음향을 부드럽게 조절해 눈과 귀가 예민한 관객들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미동 없이 공연을 관람하는 시체관극이 매너로 여겨질 만큼 관극 문화가 최근 경직되고 있다"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는 느슨한 관극 문화를 지향하는 기획"이라고 밝혔다. 국립극단 공연이 릴랙스드 퍼포먼스로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카팽'은 2019년 국내 초연 당시 주요 연극상을 휩쓸고 매진을 기록하며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재치 있는 하인 스카팽이 두 부잣집 젊은이들의 사랑을 돕는 이야기로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가 쓴 원작에 한국 신체극의 대가 임도완 연출이 현대적 감성을 입혔다. 5월 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행된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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