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먼저”…남북 긴장에 ‘비핵화·평화협정’ 또 꺼낸 중국
“대화·협상 재개, 北의 ‘합리적’ 안보 우려 해결해야”
반도체·전기차 성장 자신감 “미국은 자체 도전 직면”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두고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남북 긴장이 고조된 국면에서 중국의 역할론이 커지고 있는데 북한에 대한 제재보다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최근 반도체·전기차 등 분야에서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는 중국은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 방침을 비판하며 협력 과정에서 진정성 있는 자세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반도 긴장 원치 않아, 중국 입장 일관적”
중국의 외교 수장인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장관)은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별도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반도 문제라는 ‘병’에는 중국의 처방전이 있는데 쌍궤병진과 단계적·동시적 원칙”이라고 밝혔다.
매년 양회 기간 관례적으로 열리는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관련한 질의응답이 나온 것은 2022년 이후 2년만이다. 작년 기자회견에선 한국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북한은 남북 경제협력 관련 법안을 폐기하고 한국을 주적으로 규명하는 등 대남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한반도 긴장을 키우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중국에 북한의 대남 위협과 핵미사일 개발은 한반도 정세뿐 아니라 세계의 안정·평화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중국측에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역할 수행을 당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왕 부장 역시 “한반도 정세가 날로 긴장되는 것은 중국이 원치 않는 일”이라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관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북한 모두와 수교 관계인 중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평화와 안정’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근본적인 한반도 문제 해법에 대해 왕 부장은 대화·협상을 재개하고 당사국, 특히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중순 뮌헨안보회의에서도 한반도와 관련해 “당사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쌍궤병진이란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 후 평화협정을 하자는 미국측 의견과 반대되는 논리로 사실상 북한의 자위권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중 관계 개선 부여…대중 제재는 비판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층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지만 반도체·전기차에 등에 대한 미국의 간섭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왕 부장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인식이 계속되고 있다”며 “중국을 억압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개선되고 일방적인 제재 목록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그동안 고성능 반도체와 장비에 대한 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행정명령을 통해 중국 기술기업 투자도 제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또 최근 중국산 커넥티드카(스마트카)의 국가안보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며 전기차 분야 제재도 예고했다.
왕 부장은 “미국이 ‘중국’이라는 단어를 듣고 긴장하고 불안해한다면 강대국의 자신감은 어디 있는가. 미국이 직면한 도전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 자체에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강한 어조는 최근 첨단 기술 분야에서 빠른 성장을 이루는 것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지난 1월 중국 반도체 산업 매출은 전년동월대비 26.6% 증가해 전세계 평균(15.2%)을 앞질렀다. 지난해에는 전기차의 급성장에 힘입어 일본을 제치고 자동차 수출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중국 내에서는 미국의 견제가 오히려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며 대중 제재가 실효성이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대만 문제에 대해선 강경한 어조를 숨기지 않았다. 왕 부장은 “대만 선거 결과는 대만이 반드시 조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며 “조만간 국제사회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가족사진’을 보게 될 것이며 이는 시간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대만이 조국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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