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내일채움공제 받으려면 성희롱도 참아야?

한국여노, 직장 내 성희롱 상담 959건 분석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2명 중 1명은 회사에 피해를 신고하지만, 피해자 3명 중 1명은 신고 뒤 회사로부터 불리한 처우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파면·해임·해고 등 비교적 심각한 불이익을 받은 피해자는 전년에 비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2023 평등의전화 직장 내 성희롱 상담 사례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해 여성 상담 3037건(재상담 제외)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 관련 959건을 분석한 결과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49.7%가 피해 뒤 사내 신고 절차를 진행하거나 사업주에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율 자체는 전년보다 약 5% 상승했다. 신고 뒤 불이익을 경험한 비율도 전년 41.2%에서 34.8%로 감소했다.

하지만 신고 후 파면·해임·해고 등 신분 상실에 해당하는 심각한 불이익을 겪은 피해자는 전년(17.3%)보다 7%포인트 늘어난 24.3%로 나타났다. 박선영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연구위원은 “신고 후 불이익을 겪은 비율 자체는 감소했으나 여성 노동자들이 겪은 피해 양상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상담을 요청한 피해자의 연령대는 20대(30.2%)와 30대(32.%)가 주를 이뤘다. 평등의전화에 상담을 요청한 20대 상담자 가운데 63%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호소했다. 전년(45%)보다 18%포인트 늘어난 수준이다.

눈에 띄는 건,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 요건 때문에 성희롱 피해를 입고도 퇴사하지 못한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이 두드러지게 많았다는 점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5인 이상 50인 미만 제조·건설업종 중소기업에 취업해야 하는데, 퇴사를 하면 중도해지로 수령 금액에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평등의전화에는 “서른살 넘게 차이 나는 대표가 자꾸 고백을 해서 일하기 힘든데, 내일채움공제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아 중도 포기하자니 너무 억울하다”, “사장의 언어적 성희롱을 신고하고 싶은데 처벌은 경미할 거 같고 사직서를 내려니 청년내일채움 때문에 망설여진다” 등의 상담이 다수 접수됐다고 한다.

박 연구위원은 “원칙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가 인정되면 청년내일채움공제 재가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점이 제대로 안내되지 않은데다, 피해자가 사업주와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한곳에서 성희롱 피해를 인정받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성희롱 피해를 단순 ‘신고’한 사실만 증빙해도 재가입이 가능하도록 제도 정비와 안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