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커피 한잔, 지구는 이제 숨 쉴 수 없다

한겨레 2024. 3. 7. 16: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픽사베이

오른쪽에 있는 손에는 푸른색 지구가 놓여있고 , 왼쪽에 있는 손에는 나무와 사슴이 놓여있다 .

지난 2 월 14 일 나는 지구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다녀왔다 . 기후위기와 생태전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와 작가 , 활동가 등 70 여 명이 지구에게 뭐라도 응답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모인 자리였다 . 모임의 이름은 기후정치원년 시민선언 ( 이하 시민선언 ) 이다 .

시민선언 참가자들은 “4 월 10 일 치러지는 22 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과 정파를 넘어 기후위기 대응에 의지가 있는 정당 · 정치인에게 투표하자 ” 고 나섰다 . 당면한 기후위기 해결과 생태 전환을 위해 책임 있게 입법할 후보를 공천하도록 모든 정당에 촉구했다 . 또한 선거가 끝나고 열리는 첫 국회를 이른바 ‘ 기후 국회 ’ 로 열어 다음 사항을 실현하라고 요구했다 .

첫째 , 온실가스 감축과 재난 대응체계 구축 등 국가 차원의 전면적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공약으로 발표할 것 . 둘째 ,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무책임한 토건 · 개발 공약을 전면 철회할 것 . 셋째 , 22 대 국회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 전환을 위한 개헌 논의를 시작할 것 . 넷째 , 기후위기 문제를 전담할 국회 상설위원회와 행정부처를 신설할 것 등이다 . 더 이상 지구 생태계를 몇몇 시민의 몫으로 남겨둘 수 없으며 ,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법과 제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이 선언에 담겼다 .

픽사베이

이런 연유로 청정 고을 지리산 자락에서 공기 혼탁한 서울로 발걸음을 했으니 그야말로 아픈 지구가 나를 부른 셈이다 . 무절제한 온실가스 배출과 탐욕스러운 개발의 무한 질주는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이어지고 , 연쇄적으로 대기와 토양과 생물들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으니 내가 사는 지리산도 언제까지나 청정하고 안락한 국토는 아닐 것이다 . 자연과 인간을 살리는 생태 그물의 복원력은 이미 급격하게 힘을 잃어가고 있다 .

걱정하고 논평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 이제 지구촌 모든 국가와 시민이 전력을 다해 협력해야 한다 . 인간의 삶을 설계하고 경영하는 정치의 영역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다뤄야 할 때이다 .

나는 시민선언이 열리는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 가려고 지하철 1 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 시골 사람인 나는 그곳에서 새삼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면서 거의 한결같이 손에 든 음료수를 마시는데 , 다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 나의 지인들은 대부분 텀블러를 사용하기에 그 행렬이 참으로 생경하고 당혹스러웠다 . 이것이 도시 사람들의 일상임을 나는 새삼스레 알아차렸다 .

그래서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했다 . 시민선언 장소까지 수백 미터 길을 걸으면서 다회용 컵으로 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몇 명일까 유심히 관찰했다 .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없었다 . 그때 알았다 . 우리는 하나의 같은 세계를 사는 듯하지만 실은 다른 여러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을 .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삶의 가치와 지향이 다르면 실제로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

픽사베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예민하게 본질과 전체를 포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지혜로운 삶 ,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다 . 우리가 토해내는 일회용품 쓰레기는 지구 생태계 파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 말로는 생태계를 걱정한다면서 작은 불편 하나 감수하지 못하고 당장 편리함만을 따라간다면 자기 삶의 생태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내 삶이 무너지고 있는데 지구를 살리겠다고 ? 작다고 해서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 . 이를 진지하게 알아차리려는 노력이 자기 삶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복원하는 첫걸음이다 .

현상은 복잡한 듯하지만 원인은 매우 단순하다 . 걷잡을 수 없는 기후위기 , 생태계 파괴의 원인도 단순하다 .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과욕과 남용이다 . 그렇다면 해결도 간명하다 . 단순 소박한 삶이다 . 내가 적절하게 소유하고 소비하면 지구 생태계는 보란 듯이 살아난다 .

조선시대 문신 김정국 1485~1541 은 이렇게 말했다 . “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거처가 사치스러워 분수에 넘치는 자는 화를 당하기 쉽고 , 작은 집에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라야 마침내 이름과 지위를 누립니다 .” 이 말에 종친 이종 1433~1476 은 이렇게 덧붙인다 . “ 큰 집을 옥 屋 이라 하고 작은 집을 사 舍 라고 한답니다 . ‘ 옥 ’ 을 파자 1 하면 시지 尸至 , 즉 송장에 이른다는 뜻이 됩니다 . ‘ 사 ’ 는 쪼개서 읽으면 인길 人吉 , 곧 사람이 길하다는 뜻이 되지요 . 큰 집에 사는 자는 화를 받고 작은 집에 사는 자가 복을 받는 것이야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

시지인길 尸至人吉 , 즉 부족해야 넉넉하다는 뜻이다 . 쓸데없이 지나치게 소유한 사람에게선 내면의 결핍이 보인다 . 반면 부족한 듯한 삶의 경영에서는 내면의 자족과 여유가 보인다 . 지구촌 가족 개개인의 삶이 모두 이러할 때 자연도 건강하고 사람도 건강하게 조화로운 생태계가 빛나지 않겠는가 ? 나부터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그 길을 걸어보지 않겠는가 ?

법인 스님 /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