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적 고용불안, 열악한 처우…나아진 것 없는 ‘돌봄노동’ 실태[제116주년 여성의 날]
“일하다 몸이 아파도, 집안에 상이 나도 쉴 수가 없습니다. 대체 인력이 없어 제가 쉬면 바로 돌봄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휴게 공간이 따로 없어 휴식 시간도 보장받지 못합니다.”(장애인활동지원사 이순화씨)
“어르신을 모시고 야외에서 산책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20명 가까운 어르신을 돌보는 현실에서 질 좋은 서비스는 불가능합니다.”(전현욱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사무처장)
민주노총·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실은 세계 여성의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돌봄노동자 노동권 실태와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 토론회를 열었다. 요양보호사·장애인활동지원사·아이돌보미 등 전국 각지의 돌봄노동자들이 모여 열악한 노동환경 실태를 증언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는 대부분 여성이 감당하는 돌봄노동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았다. ‘돌봄노동은 집안일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을 깨지 못하면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요원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22년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를 보면 사회복지직 종사자의 89.3%, 돌봄직 종사자의 92%가 여성이다.
참가자들은 돌봄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근속 인정 체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 사무처장은 “10년을 일해도 기관을 옮기면 경력이 사라진다”라면서 “2017년 장기근속장려금제도가 도입됐지만 3구간으로만 나뉜데다 소액만 지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10년을 일해도 호봉이 인정되지 않고, 근속가산금도 받을 수 없다”라면서 “하루에 8시간 이상 서비스를 제공해도 ‘쪼개기 근무’ 탓에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안정한 근무 시간도 문제로 꼽혔다. 이씨는 “이용자의 병원 입원·여행·집안 행사 등을 이유로 수시로 서비스가 중지된다”라며 “대기 기간에는 급여가 없어 한 달 수입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졸여야 한다”고 했다. 인천에서 10년째 아이돌보미로 일하는 백영숙씨는 “전체 아이돌보미의 30% 정도가 60시간 미만 근무자”라며 “교통비·식사비 지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변에서는 6~10년차가 되면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돌봄노동을 시장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대희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지부장은 “코로나19 시기 방호복을 입고 이용자와 함께 격리돼 돌봄서비스를 제공했다”라며 “코로나가 끝나니 예산 삭감, 조례 폐지 시도 등 존폐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급할 때만 공공돌봄을 찾다 이후에는 시장 논리만 들이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돌봄노동자법 제정을 촉구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대부분 중·고령 여성이 제공하는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는 가부장제 등 제도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면서 “기본법에 돌봄노동의 기본원칙을 규정해 사회적 인식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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