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 건강·행복 찾는” 노원구의 파킨슨병 재활 프로그램
60~80대 15명 참여, 출석률 90% 이상에 증상 변화도 체감해
[서울&] [커버스토리] 걷기 수월해지고, 떨림 줄어들고…“여럿이 함께해 더 좋아요”
밴드·폼롤러·스모비 등 소도구 활용
50분씩 주 2회, 중강도 운동 이어와
놀이 축구 등 게임으로 흥미·재미도
이달부터 상계보건지소에서도 운영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조기연(84) 할머니는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딸과 함께 마들보건지소를 찾는다. 파킨슨병 질환자 대상 재활그룹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10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조 할머니는 지난해 10월부터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걸음걸이가 한결 수월해졌고, 이전에 엄두도 못 냈던 계단 오르기도 이젠 3층까지 할 수 있다. 할머니의 딸은 “집에선 10분도 하기 힘들어하는 운동을 여기 와서는 한 시간씩 한다”며 “운동하러 (보건지소) 가자면 엄마가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하신다”고 전했다.
지난 2월21일 오전 겨울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조기연 할머니를 비롯한 15명이 재활그룹운동에 참여했다. 60~80대 파킨슨병 질환자들로 남자 어르신이 12명으로 많았다. 파킨슨병 진단 시기부터 증상이 나타난 순서와 증상의 강도는 모두 다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한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리치료사 김숙(50)씨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보조강사와 자원봉사자가 어르신들의 운동을 도왔다. 8평 남짓의 재활운동실 바닥에는 파란색과 초록색의 두꺼운 운동매트가 쭉 깔렸다. 볼, 스포밴드, 폼롤러 등 소도구를 활용해 50분 동안 20여 개 동작을 거의 쉴 틈 없이 이어갔다. 동작은 10초씩 유지하고, 5~10회 반복했다. 어르신들은 다소 힘든지 숨을 가쁘게 쉬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멈추지 않고 열심히 따라 하려 애썼다.
마들보건지소의 파킨슨병 환자 대상 맞춤 재활 프로그램 ‘뇌크레이션’은 지난해 9월 처음 선보였다. 2022년 10월 개소 때부터 근무해온 김숙씨는 노인 인구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가운데 지역 통계에서 대표적인 노인성 뇌질환인 치매나 뇌졸중 못지않게 파킨슨병 환자가 느는 점을 눈여겨봤다. 김씨는 “치매나 뇌졸중처럼 파킨슨병도 재활운동을 돕는 보건소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파킨슨병은 운동을 조절하는 뇌 부위의 신경 전달 물질 ‘도파민’ 생산 세포가 손상돼 움직임이 느려지고 손발이 떨리거나 몸이 뻣뻣해지는 등의 운동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적절한 관리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고 증상을 완화할 수 있기에, 김씨는 맞춤형 재활운동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그간 공부해온 소도구, 도수 치료 등을 접목했다. 김씨는 “맞춤형으로 1년 정도 꾸준히 진행해 어르신들의 일상생활이 나아질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프로그램은 소도구를 활용한 중강도 운동으로 구성했다. 매트 위에서 스포밴드, 볼, 폼롤러, 스모비, 밸런스쿠션 등 소도구를 활용해 운동 효과성을 높이며 안전하게 진행한다. 스포밴드는 근육과 관절을 늘려주며, 원통 모양의 긴 스펀지인 폼롤러는 전신 근육 이완과 균형 강화에 도움을 준다. 스모비와 밸런스쿠션은 진동을 느끼며 운동할 수 있게 돕는 도구로 뇌 활성화와 균형감각 개선에 좋다. 미몽이 라켓을 반복해 흔드는 동작은 신경근을 자극해 떨림 증상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김씨는 “노화가 진행되면 걷기 등 유산소 운동만으로 부족하고, 근력 향상을 위해 중간 정도 강도의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습에서 어르신들은 소도구를 활용해 누워서, 앉아서, 서서 상·하체를 골고루 쓰며 운동했다. 김씨는 무선이어마이크를 부착하고 어르신들 사이를 오가며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포기하지 않게 독려해줬다. 얼굴 근육도 풀 수 있게 간간이 가벼운 농담도 건넸다. 김씨가 “어르신들, 지금 마스크 너머로 웃고 있으시죠”라고 말하니 몇몇 참가자의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옅은 눈웃음이 띠어지기도 했다.
소도구를 활용하는 정확한 자세를 김씨가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구슬이 들어 있는 주름진 원형 도구인 스모비를 양손에 잡고 “팔을 내릴 때는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는 들고 허리는 펴고 시선은 앞을 보세요”라며 시범을 보여줬다. 어르신들이 그의 동작을 따라 스모비를 앞뒤로 흔들자 ‘쓱쓱’ 소리가 났다.
어르신들은 한 세트를 마치고 한 발씩 앞으로 내밀고 다시 스모비를 흔들었다. 한 발로 앞, 옆, 뒤 찍기를 연습한 뒤 팔을 같이 흔드는 동작이 이어졌다. 스텝이 꼬이고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김씨는 “지지하는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야 운동효과가 있어요. 마음대로 안 되더라도 꾸준히 하면 할 수 있어요”라고 북돋워줬다.
김씨는 틈틈이 운동 효과에 관해 설명도 덧붙였다. 공을 두 손으로 반죽하듯 눌러주는 동작은 손끝을 자극해 뇌 활성화를 돕고, 다리 아래에 폼롤러를 넣고 다리를 일직선으로 드는 동작은 보행 근육을 강화해준다고 알려줬다. 밴드를 잡고 무릎을 세워 몸을 반쯤 젖히며 버티는 동작에서 어르신들은 ‘바르르’ 떨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김씨는 “그렇죠, 잘하셨어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지금처럼 집에 가서도 자주 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어르신들이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운동하도록 재미와 흥미를 더하는 게임도 곁들인다. 프로그램명을 뇌크레이션(‘뇌’와 ‘레크리에이션’의 합성어)으로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주로 놀이로 하는 축구, 스파이크, 허들 등을 한다. 이날 강습이 끝난 뒤 10여분동안 놀이 축구를 했다. 양쪽 골대에 여자 어르신들이 골키퍼를 하고 남자 어르신들이 두 팀으로 나눠 게임을 했다. 움직임은 둔하지만 공을 차보려 부지런히 발길질했다. 강습 땐 동작 따라 하기를 힘들어했던 조기연 할머니는 좋아하는 축구 게임 땐 표정이 밝아졌다. 조 할머니는 “힘든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어 재밌다”고 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어르신들의 호응은 90% 넘는 높은 출석률로 이어졌다. 13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김효중(69) 할아버지는 구청 소식지를 보고 프로그램을 알게 돼 지난해 가을부터 참여했다.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왔는데, 최근엔 주위에서 자세가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김 할아버지는 “여기서 운동을 체계적으로 꾸준하게 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며 “척추측만증처럼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는데, 이젠 균형 잡고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신들은 재미있게 게임에 참여했다.'>
손발 떨림으로 4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김영준(75) 할아버지도 개근자다. 보건지소에 치매 검사를 받으러 왔다가 재활 프로그램을 안내받아 신청했다. “떨림이 덜해지고 몸 중심 잡는 게 나아졌다”며 “무엇보다 집에서만 거의 지내다 밖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니 참 좋다”고 했다. 두 어르신은 프로그램 운영을 더 자주 하길 바랐다. “매일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주 4회로라도 늘었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파킨슨병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이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대기자도 생기고, 다른 동 주민들의 문의도 늘었다. 이달 7일부터 상계보건지소에서도 매주 목요일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다. 마들보건지소는 참여하고 싶은 주민들이 집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할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동 주민센터나 종교시설 등에서 모여 영상을 보며 따라 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이 자조 모임을 만들어 영상을 활용해 운동을 이어갈 수 있게 돕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파킨슨병 질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이 낮은 상황을 지적해온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초기 발견과 관리가 중요한 병인 만큼 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와 가족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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