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 풀었는데…재건축·재개발시장은 왜 차가울까

2024. 3. 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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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진단 폐지는 오해
사업시행 인가 전까지
지연시켜 놓은 상태
아파트 공사비 급등에
조합원 분담금 치솟아
사업진행 자체 어려워
정부정책 안통하는 상황
'합리적 기대 가설' 떠올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정자동 지역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지난 1월 10일 정부는 노후 신도시 재정비가 예정된 경기도 고양시에서 대통령 주재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와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재개발·재건축 전면 규제 개선, 1기 신도시 등 노후 계획도시 재개발 신속 추진,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 등), 공공주택 공급 확대(12만가구→14만가구), 부동산 금융(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방지 지원 등이었다.

하지만 정작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안전진단 폐지'에 쏠렸다. 국토교통부 역시 이날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30년 된 아파트를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해 도심 공급을 확대한다'는 문구를 크게 부각해 놓았다. 이 보도자료의 '안전진단 없이'라는 문맥을 해석하면 재건축사업 추진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첫 번째 절차상 관문인 안전진단이 폐지된 것이라고 누구나 인식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대책을 발표하자마자 '재건축 6년 빨라졌다' '재건축 날개 달았다' '재건축 현장 후끈 달아올라' '안전진단 폐지 재건축 돌풍 시작' 등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며칠간 넘쳐났다.

1기 신도시는 통합재건축 시 안전진단 면제, 용적률 향상, 금융 지원과 함께 2024년 하반기까지 선도지구를 지정하기로 하고 2025년까지 특별정비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일반 재개발사업 등에 대한 노후도 요건(30년 이상 건물 비율)을 현행 3분의 2에서 50%로 완화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장은 반응하지 않고 있다. 정비사업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도 시장은 여전히 차갑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부 대책 발표 내용은 사실상 안전진단 폐지가 아닌 사업시행인가 전까지 안전진단 과정을 지연만 한 것이라는 사실을 시장 참여자들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안전진단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법을 통과해야 하는 사항이다. 시장 참여자들에는 '실거주 의무 폐지'의 시행착오가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조합과 건설사의 공사비 갈등으로 인한 사업 진행 문제, 즉 사업성과 조합원 분담금 문제다. 이미 사업을 진행 중인 사업장은 물론 지난해 완화된 안전진단 기준으로 허들을 넘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현장들조차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강북권에서 사업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보였던 노원구 상계주공 5단지가 가구당 5억원이라는 분담금 부담 문제로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한 것이 현재 시장 논란이 단순히 안전진단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현시점의 재개발 재건축 현장은 부동산 시장의 조정기·침체 국면과 함께 공사비 증가로 추가 분담금이 늘어나 조합원 입장에서는 사업성이 악화했다. 그나마 일반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는 강남권 일부 지역은 사업 진행 속도가 빨라질 수 있겠지만 최근 발생하고 있는 미분양·미계약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고려하면 그렇지 못한 현장들은 분양가를 함부로 높이기엔 부담이 크다. 자칫 금융 비용 증가로 인해 곤혹스러운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면 향후 재건축·재개발 시장은 당분간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시정비업계에선 2011~2013년을 도시정비사업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분양 시장이 침체되고 정부의 공공 관리자 제도 등이 도입되면서 도시정비사업은 침체 국면에 돌입했다. 시공사들은 보수적으로 도급제 방식을 채택하게 됐고 2014년이 돼서야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를 벗어나면서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한껏 달아올랐던 1기 신도시 재건축 현장들도 '안전진단 폐지'라는 키워드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는 부동산 시장 반응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시기다. 이를 시장의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본다면 시장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현재의 주택 가격 수준이 고평가돼 여전히 거품이 남아 있고 치솟은 건축 공사비로 인한 추가 분담금 증가가 안전진단 완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1995년 노벨상을 받은 로버트 루커스의 '합리적 기대 가설'을 되새겨볼 때다. 1970년대 세계 경제가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정부가 온갖 대책을 쏟아내도 경기가 호전되지 않자 아무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때 루커스는 경제 주체들인 소비자, 가계,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을 이미 파악하고 이에 맞춰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 통하지 않는 현상을 '합리적 기대 가설'을 통해 설명했다.이를 적용해 작금의 도시정비사업을 바라보고 해석하자면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고평가된 주택가격, 공사비 급등 등으로 인한 추가 분담금 등이 실수요자나 투자 수요자들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보수적으로 시장에 접근할 때다.

[한문도 국제부동산정책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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