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영화 ‘파묘’는 어떻게 1000만을 바라보게 됐을까
영화 <파묘>가 10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파묘>는 개봉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330만명)을 넘기고, 7일 현재 7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13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보다 빠른 흥행 속도다. 이런 흐름이 유지된다면 주말 이후 1000만 관객 돌파도 기대해볼 수 있다. 개봉 시기는 비수기, 장르는 오컬트인 영화로서는 특별한 성과다. <파묘>는 어떻게 1000만 영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을까.
풍수지리, 묫자리에 중장년 관객도 호기심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묘에 탈이 났다’는 말을 평소에 많이들 하니까, ‘파묘’라는 제목을 듣고 궁금해서 가봤다.” 개봉 첫 주에 파묘를 관람한 60대 관객 정선영(61)씨는 이렇게 말했다. “딸이 재밌다고 추천하기도 했고, 굿을 할 때 ‘강원도 고성군 주강면~’ 이라고 하는데 절에서 매일 듣는 소리라 재밌기도 했다.”
<파묘>의 첫번째 흥행 요인으로는 50대 이상 중장년층 관객이 개봉 초기부터 활발하게 극장을 찾은 것이 꼽힌다. 보통 흥행작들은 젊은 세대들이 먼저 영화관을 찾아 입소문이 나면 그 이후에 중장년층 관객이 유입되는데, <파묘>의 경우 여러 세대 관객이 동시에 유입되면서 흥행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CGV에 따르면 <파묘> 개봉 첫 주(2월22~25일) 50대 이상 중장년 관객 비중은 13.6%, 2주차는 16.9% 였다. 젊은 세대의 선호가 높은 ‘오컬트’ 장르치고는 초기부터 높은 중장년 비중이다. 풍수지리와 묫자리라는 영화의 핵심 소재가 중장년층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결과로 보인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오컬트처럼 보였지만 오컬트를 넘어 우리 민족 정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오컬트’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밀교, 이단, 신흥종교 같은 소재 대신 일제강점기, 풍수지리, 굿 등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소재에서 비롯된 공포의 정서를 영화적으로 잘 구현하면서 여러 세대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강 평론가는 “한국인에게 DNA로 전달되는 근본적인 금기나 공포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오컬트 영화라는 B급 마이너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성수기’가 무의미해진 극장 환경
코로나19 이후 비수기와 성수기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극장 환경 역시 흥행에 도움이 됐다. <파묘>는 설 연휴 이후인 지난달 22일 개봉했다. 전통적으로 비수기로 취급되던 시기다. <파묘> 배급사인 쇼박스 조수빈 홍보팀장은 “요즘은 예전과 달리 영화 한 편이 온전히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게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과거 극장가에서는 볼만한 영화들이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한꺼번에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관에 걸린 작품이 많을수록 관객도 극장을 더 많이 찾았고, ‘1등이 잘돼야 2등도 잘된다’는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시장의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이런 문화는 사실상 사라졌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이 늘고, 영화 티켓값도 상승하면서 더 이상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도 까다로워졌다. 조 팀장은 “요즘은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보겠다는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영화관을 찾기 때문에, 비슷한 규모의 영화들끼리 1,2등 경쟁을 하는 것보다는 경쟁작이 조금 덜한 상황에서 개봉한 다음 입소문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할 화제작들이 없는 시기에 개봉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또 “<서울의 봄>도 작년 11월에 개봉했는데, 이 역시 코로나 이전에는 비수기로 여겨졌던 때”라며 “하지만 어떤 영화가 힘을 받으면 관객이 드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찝찝함 없는’ 오컬트 영화의 매력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됐던 영화의 구조적 특성, 설명적 대사들 역시 결과적으론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파묘>는 무당 이화림이 미국에 사는 부자 한인가정으로부터 일을 의뢰받고 조상 묘를 파묘한다는 첫번째 이야기와 파묘 후에도 계속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두번째 이야기로 나뉜다. 첫번째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두번째 이야기로 들어갈 땐 아예 다른 영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영화의 흐름이 뚝 끊긴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등 장재현 감독의 전작에 비해 캐릭터가 행동의 이유를 ‘대사’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장면도 많다. 강 평론가는 “보통 오컬트 영화를 보고 나면 ‘찝찝하다’는 느낌이 남는데, <파묘>는 명확히 부정적인 대상을 설정한 것이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준다. 기존 오컬트 팬들에겐 아쉬운 부분이 일반 관객들에겐 카타르시스적인 것으로 재해석됐다. ‘오컬트’라는 장르를 역이용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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