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 ‘심리복지’ 꼭 필요한 단계 됐어요”
[서울&] [자치소식]
집단 심리 상담과 예술 치료 접목해
삶의 의미도 찾고 좋은 관계 만들어
마음쉼 참여 주민 만족도 매우 높아
“청소년·청년 프로그램 확대해갈 것”
“이곳에 오는 게 낙이죠. 설레고 외롭다는 생각도 안 나요. 동병상련인지, 여기 오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도 서로 친하게 지내죠. 1시간 강의 듣고 만들기를 하니 여지껏 안 해본 것이라 기대되고 좋아요.”
시흥4동에 사는 엄귀화(67)씨는 지난 2월28일 “지난해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올해 다시 시작해 반가운 마음으로 왔다”며 “이곳에 오면 마음의 병이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했다.
엄씨는 2018년부터 금천구에서 하는 심리 상담과 심리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2월에 처음 시작한 ‘마음 한 조각 띄우기’에 참여했다. 엄씨가 이렇게 꾸준히 참여하는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엄씨는 1995년 금천구로 이사해 봉제공장 미싱공으로 일했다. 안타깝게도 2009년 유방암 수술을 한 뒤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1인가구인 엄씨는 어쩔 수 없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다행히 5년 동안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아 암은 완쾌됐지만, 그동안 혼자 병마와 싸우느라 많이 힘겨웠는지 우울증을 겪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이후 너무 힘들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어요. 낮에는 방에만 있다가 저녁 되면 술을 사러 갔죠.” 상태가 더 나빠져 병원에 갔더니 입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병원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내 마음을 안정시키겠다고 했죠.”
엄씨는 2017년 4월 금천구청의 도움으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술과 담배를 끊었다. 말하는 중간중간 감정이 복받쳤는지 엄씨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금천구는 올해부터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대면 심리 상담과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했다. 2월에는 우울증을 앓거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을 위해 집단 상담과 예술 치료를 접목한 ‘마음 한 조각 띄우기’를 무료로 운영했다. 긍정 심리학과 무드등 만들기, ‘감정, 너의 이름은’과 미스트 만들기, 삶의 의미와 신데렐라 유리구두 꾸미기, 관계 속의 나와 미니어처 아지트 만들기 등으로 구성됐다.
주민 15명을 대상으로 매주 1회씩 4차례 진행해 고통과 불안감을 느끼는 ‘부정 정서’를 삶의 활력과 희망을 찾는 ‘긍정 심리’로 바꾸도록 도왔다. 2월28일에는 금천구 독산동 새움병원 별관 2층에 있는 ‘심리상담 마음쉼’에서 프로그램 마지막회 ‘관계 속의 나와 미니어처 아지트 만들기’가 진행됐다. 1시간은 강사의 강의, 나머지 1시간은 강의 주제와 관련한 만들기인데, 가슴에 새길 만한 명언을 적어 액자로 만들어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 참여자는 우울증 등으로 상담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첫 회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졌어요. 나만 힘든 게 아님을 알고 달라지죠.”
프로그램을 진행한 김수진 심리상담 마음쉼 소장 겸 슈퍼바이저(상담학박사)는 “사람들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우울증, 상실감, 외로움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상호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 삶의 방향성을 찾고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면 개인의 욕구나 성격이 나타나죠.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지지받는다고 생각하면 심리 안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죠.”
김 슈퍼바이저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참여자들의 우울 증세가 더 심하고 중증인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며 “우리 사회는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심리 복지’가 꼭 필요한 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금천구는 2018년부터 심리상담 마음쉼에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5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월 ‘마음 한 조각 띄우기’에 이어 4월에는 노인, 6월에는 가족, 8월에는 청년을 대상으로 집단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월부터 12월까지는 공익근무요원을 대상으로 종합 심리검사와 취업 상담도 진행한다. 심리 상태에 따라 전문 심리 상담사가 진행하는 개인 상담 10회와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구는 이를 위해 예산 1억7천만원을 배정하고 3월부터는 5명인 심리상담사를 7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일반 병원에서 상담하거나 치료받으면 비용이 많이 들어요. 이곳은 무료라서 경제적 부담도 없고 상담 시간 제한도 없어 믿고 찾아오면 큰 도움이 됩니다.”
송현이 금천구보건소 건강증진과 생명존중팀장은 “심리상담사가 모두 경험이 많아 양질의 상담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심리상담 마음쉼에서 진행한 상담 건수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1만4680건에 이른다. 1년 평균으로 따지면 2446건씩 상담한 셈이다. 프로그램은 경찰 공무원 집단 심리, 영화로 보는 심리 이야기, 청소년 집단 프로그램, 올바른 부모 되기, 쉼클래스, 다문화 파라곤, 힐링컬러체험, 책으로 보는 심리 이야기, 내 인생 행복 찾기 등 모두 13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심리상담 마음쉼에서 상담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2022년 11월17일부터 12월9일까지 17일 동안 273명을 대상으로 1~10점 척도로 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 10점 64%, 9점 25%, 8점 9%, 5점 2% 순으로 나타났다.
마음쉼을 이용하면서 ‘좋았던 점’으로 상담자의 전문성(22%)을 가장 높게 꼽았다. 이와 함께 서술형 질문인 개선이나 보완할 내용으로 ‘상담시간 늘리기’ ‘청소년 상담 강화’ ‘시설을 더 늘리면 좋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프로그램을 늘려달라는 주민 요구가 매우 높아요.” 송 팀장은 “앞으로 청소년이나 청년 프로그램을 확대해 지역 사회 다른 기관과 함께 운영해갈 계획”이라며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는 주민들을 위해 더욱더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활성화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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