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은 국가경쟁력 강화의 수단? 여가부, ‘여성의날’ 메시지도 바뀌었다
“이번에는 진짜 폐지되나 싶더라고요.”
3·8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에도 여성가족부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지난 달부터 ‘조직 힘빼기’ 인사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부처 폐지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가족부 내부에선 최근 국장 2명이 직위해제와 함께 대기발령 조치가 되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국장급인 청소년정책관과 가족정책관이 대기발령 조치됐다. 현재는 정책기획관과 권익증진국장 자리가 공석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타 부처가 2시간씩 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를 여가부는 46분만 했을 때, 대규모 예산 삭감 때 받았던 충격보다 더 크다”고 했다.
직원들이 느끼는 무기력함은 더 크다고 한다. 여가부는 노조나 직장협의회가 없어 타 부처에 비해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여가부 관계자는 이날 부처 국장들의 직위해제·대기발령 조치에 “인사사항이라 아는 게 없다”고 했다.
타부처 공무원들이 여가부로 오기 시작하며 여가부 폐지론은 더 힘을 받았다. 지난달 27일에는 복지부 국장이 여가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됐다. 행정안전부(조직)나 교육부(청소년)에서 종종 파견을 왔지만 복지부 국장의 파견은 이례적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차관 대행 체제에서 부처의 실국장급에 다른 부처 출신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부처 폐지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2231629001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인사로 여가부 힘빼기에 들어갔다.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를 현 정부 초대 여가부 장관에 임명했고, 현재 장관대행인 신영숙 차관은 공무원 인사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에서 왔다.
이날 여가부가 낸 여성의 날 메시지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신 차관은 여성의 날 기념 메시지에서 여성의 사회참여에 따른 국가경쟁력 강화를 언급했다. 신 차관은 “여가부는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에 집중하고 있고, 일·가정 양립 시스템을 탄탄히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는 경제적 자립 기반을 튼튼히 하는 동시에,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인구위기 속에서 국가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는 경제적 자립 기반을 튼튼히 하는 동시에,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인구위기 속에서 국가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3월7일)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추진하기 전, 최근 몇 년 사이 나온 여성의 날 메시지는 ‘성평등’을 언급하며 더 나은 여성의 삶 자체에 집중했다. 인구 증가 등 국가경쟁력 강화의 수단이나 도구처럼 여겨지는 표현은 자제했다. 신 차관의 이날 메시지에는 향후 여성정책의 초점이 일·가정 양립 정책에 맞춰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다시 여가부 폐지론을 불지피는 것이 지지층 결집 전략이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김현숙 전 장관의 사표를 5개월만에 수리했다. 후임 장관은 지명하지 않았다. 재차 여가부 폐지론을 띄우며 갈등구도를 다시 만들어 청년 남성들의 지지를 되찾으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가부 폐지론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후보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에서 시작됐다. ‘성별 갈라치기’를 통한 지지층 결집시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당시 여가부 폐지론의 아이디어 제공자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였다.
여가부 폐지는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해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 총선 결과에 따라 여가부 폐지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여가부 관계자는 “(선거)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순 있지만 특별히 가정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부처의 기능 이관은 정부가 법령을 고치지 않고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복지부에서 여가부의 기존 업무를 하게 하고, 해당 업무의 범위를 여가부에서 줄이면 여가부의 힘을 뺄 수 있다. 여가부 직원들 사이에선 ‘껍데기만 남은 여가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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