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아이유’와 장기하 만나 ‘밤양갱’ 플러팅…“2024년 가요계의 대단한 사건”
K-팝과 다른 왈츠풍…짧고 쉬워 숏폼 최적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어둠의 아이유’와 장기하가 만나자, 일이 커졌다. 밤양갱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달디단 노랫말’에 쉴새없이 빙글빙글 돌아야 할 것만 같은 이 노래 때문이다. 가수 비비(26)의 ‘밤양갱’이다.
국내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에 따르면, 비비의 ‘밤양갱’은 지난 13일 발매 이후 열흘 만인 24일 톱100 차트 정상에 오른 이후 5일 현재까지 11일간 1위를 차지했다. 멜론은 물론 지니, 유튜브 뮤직, 애플뮤직, 플로, 벅스까지 국내외 음원 플랫폼 왕좌를 꿰찬 상황이다. 비비로서는 난생 처음 있는 일이자, 한 달여간 1위를 지킨 ‘진짜 아이유’의 ‘러브 윈스 올’까지 밀어낸 성취다.
단지 음원 성적만 좋은 것은 아니다. 지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이른바 ‘밤양갱 플러팅’이 한창이다. ‘밤양갱’을 활용한 각종 커버 영상이 쏟아지고, 심지어 AI(인공지능) 커버 챌린지도 인기다. 오프라인에선 밤양갱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비비의 ‘밤양갱’은 2024년 상반기 가요계의 사건”이라며 “K-팝이 장악한 음악시장에서 본질적으로 좋은 음악이 나왔을 때의 시너지가 모아진 중요한 현상”이라고 했다.
‘밤양갱’의 기세는 ‘노래의 힘’에서 나온다. 이 곡은 비비와 장기하가 만나 최고의 협업을 보여준 사례다. 기존 장기하 노래 스타일을 따르면서도 비비라는 가수의 이미지 마저도 완전히 전복시켰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좋은 송라이팅과 좋은 가창이 만나 최고의 시너지를 낸 협업곡”이라고 했고,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단순히 재미를 넘어 잘 만든 노래가 예사롭지 않은 대단한 힘을 보여준 곡”이라고 했다.
‘밤양갱’은 장기하가 작사, 작곡, 편곡까지 도맡은 곡이다. 2분 26초 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곡은 왈츠풍의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에 장기하의 장기인 말 맛을 살린 노랫말이 붙었다. 잘 짜여진 K-팝 공식을 벗어나 색다른 분위기도 입었다. 전문가들은 이 곡의 독특한 음악적 특징이 지금의 인기를 견인했다고 본다.
임희윤 평론가는 “기존 K-팝에선 잘 쓰지 않는 4분의 3박자의 왈츠 풍의 곡으로, 내적 고양감을 주는 재치있는 리듬감과 클래시컬한 아름다운 선율이 어우러졌다”고 분석했다. 정민재 평론가 역시 “장기하의 노래에서 종종 등장하는 당김음이 자유자재의 리듬감으로 살아나 느긋한 재미를 주는 곡”이라고 평했다.
장기하는 ‘밤양갱’을 통해 ‘출중한 작곡 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고, 비비는 가수로서 재평가됐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밤양갱’은 장기하가 과거 발표한 사랑 노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으나, 곡의 재미를 잘 살린 것은 비비의 보컬 역량”이라며 “가사에 쓴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을 선명하게 표현해 노래의 매력이 커졌다”고 봤다.
비비는 장기하가 이 곡에서 표현하려 했던 ‘당김음의 미학’을 매력적인 보컬톤으로 훌륭하게 소화했다. 밀고 당기는 리듬감의 자연스러운 표현들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가 ‘밤양갱’을 말할 땐 꼭꼭 씹어 내뱉는 발음이 귀에 착 감긴다. 가요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으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비비의 훌륭한 보컬 역량 덕분에 곡의 시너지가 커졌다는 것이다. 곡의 보컬 프로듀싱 역시 장기하가 맡았다.
임 평론가는 “장기하의 무뚝뚝하고 기교 없는 가창으로 ‘밤양갱’을 불렀다면 지금의 신드롬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며 “장기하의 설계대로 움직인 비비로 대중적 히트를 칠 수 있었다”고 봤다.
비비는 ‘밤양갱’을 통해 ‘어둠의 아이유’를 벗고 ‘빛의 세계’로 나왔다. “섹스 머니 나를 중독시킨다”(‘나쁜X’)며 공연 중 콘돔을 뿌리며 거칠고 자유분방한 MZ(밀레니얼+Z) 이미지로 유명했던 그였지만, 이젠 온전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보컬리스트로 환골탈태했다. 비비가 ‘어둠의 아이유’로 불린 것도 아이유와 음색은 닮았지만, 그의 노래가 상대적으로 어두웠기 때문이다.
정 평론가는 “비비가 들고 나온 이전 곡들은 어려운 데다 콘셉트는 명확하지 않고, 음악 보다 캐릭터의 특정 테마를 보여주는 식이어서 대중적이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번 곡을 통해 비비의 역량이 재발견, 재평가 됐다”고 말했다. 김도헌 평론가는 “이 곡을 통해 비비는 기존의 섹시 콘셉트나 강렬한 이미지를 벗고 좋은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봤다.
가수 이효리가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로 밤양갱을 부른 영상을 SNS에 올렸다. 뮤직비디오 속 비비의 표정을 따라하며 재미난 듯 불러보는 ‘밤양갱’. 지금 SNS는 ‘밤양갱 놀이터’가 됐다. 이효리 뿐만 아니라 너나없이 ‘밤양갱 플러팅’에 한창이다.
‘밤양갱’의 확산에 영향을 준 것은 짧고 쉬운 노래와 누구라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이라는 데에 있다. 임 평론가는 “기승전결 없이 버스(Verse)와 코러스만 있는 ‘밤양갱’은 단순한 구조로 텅 빈 사운드에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선율만 도드라져 숏폼 챌린지에 최적화됐다”고 봤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밤양갱’은 태생 자체가 틱톡을 중심으로 한 숏폼 플랫폼에 딱 맞는 형태의 곡인 셈이다. 덕분에 연예인의 커버송도 상당하나 ‘노래 좀 한다’는 일반인들까지 가세해 영상을 올리고 있다.
노래 가사에 착안해 만든 영상엔 동화 같은 정서가 담겼다. 이 곡은 밤양갱을 소재로 연인과의 이별을 담백하게 그려냈다. 장기하의 ‘나란히 나란히’(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한 답가이자,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찾아온 비비의 ‘사랑 에라(Era·시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비비는 이 곡에 대해 “사랑과 행복은 거창하고 화려한 것보다는 소소하지만 늘 함께 하면서 나눴던 추억, 기분 좋은 기억, 그런 작은 조각들에서 비롯된다는 걸 밤양갱으로 빗대어 표현했다”고 말했다. 밤양갱과 만난 이별의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정서는 SNS 속 감성 MZ를 움직여 촉촉한 이별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있다.
노래 밤양갱의 인기에 현실 양갱(?) 역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밤양갱’ 발표 이후 이마트에서의 양갱류 매출(2월 13일~3월 3일)은 전월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했다. 오프라인에서 가까스로 밤양갱을 구한 양갱러들은 ‘밤양갱’ 노래에 맞춰 ‘달디단 밤양갱’을 야무지게 시식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요즘 MZ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할매 감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유튜브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에 ‘밤양갱’을 입힌 AI 커버 영상이 인기다. ‘빛의 비비’ 아이유 영상은 무려 48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며 장기하는 58만회, 오혁 34만회, 박명수는 24만회, 백예린 12만회 등을 기록 중이다. 배우 황정민의 영화 영상과 대사를‘ 밤양갱’ 가사에 맞춰 편집한 영상은 무려 196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밤양갱’의 대중적 인기는 기존 K-팝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안무 챌린지나 노래 커버, BGM(배경음악) 사용으로 히트곡 반열에 오른 곡은 많았지만, 이를 넘어 소비 문화까지 바꾼 사례는 흔치 않다.
정 평론가는 “‘밤양갱’의 확산에 특정 세대의 취향과 감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부분도 있다. 만약 제목이 ‘탕후루’였다면 지금의 시너지는 없었지 않겠나”라며 “밤양갱이 주는 소재와 어감의 재미가 다양한 콘텐츠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고 봤다. 김 평론가는 “간결하고 명료한 원곡이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게 했다”며 “기존 히트곡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발하게 소비되며 밈(meme)까지 만든 희귀 사례라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곡”이라고 봤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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