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기술’ 좇는 삶, 여전히 가슴이 뜨겁게 뜁니다”

서울앤 2024. 3. 7.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⑱ 마을기술센터 ‘핸즈’ 정해원 대표

[서울&] [다시, 시작]

마을기술센터 핸즈의 정해원 대표. 강정민 작가

과학자가 되고 싶어 농화학과에 진학

‘엔트로피’ 읽은 뒤 점차 인문학에 관심

‘국제협력단’ ‘대안학교 교사’ 지낸 뒤에

회사 들어갔다 ‘적정기술’ 매료돼 퇴사

2014년 ‘인간적 기술 추구’ 핸즈 창업

“우리 망한다”식 종말론 환경교육 반대

학생들에 해결 가능성 보여주려 노력

‘교재 팔기’ 안 하면서 영역 조금씩 넓혀

아빠와 아이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돌리자 분수의 물줄기가 치솟았다. 앞에서 지켜보던 어린이는 작동 원리가 신기한 듯 허리를 숙여 분수를 보고 있다. 마을기술센터 ‘핸즈’(handz)의 정해원(49) 대표가 지난해 참여했던 ‘꿈마을 와글와글 어린이축제’의 한 장면이다.

정씨는 서른 후반에 지금과 달리 인삼식품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씨가 퇴근하고 ‘적정기술’ 영상을 보는데 그의 가슴이 막 뛰었다. 적정기술은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고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기술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퇴사하고 가슴이 시키는 일에 뛰어들었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아버지가 고장 난 카세트를 들고 에이에스(AS)센터에 가서 고치는 걸 본 기억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정해원씨는 대학에서 농화학과를 선택했다. 어느 날 수업에서 교수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이 쓴 책 <엔트로피>(1994년, 동아출판사 펴냄)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책은 “자연은 무질서한 상태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소개했다. 그때까지 정씨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선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인문학 분야에 관심이 생겨 과학사를 전공으로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는 군 복무 대신 국제협력단으로 인도네시아에 파견돼 그곳 농민들과 일하며 넓은 세상을 경험했다. 그때 한국에서 보낸 신문을 보다가 대안학교 교사에 관심이 생겼다.

줄넘기발전기. 강정민 작가

정씨는 2002년에 충남 홍성군에 있는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대학 과정)에 입학했다. 나이와 경험이 다양한 12명의 동기와 그는 난생처음 농사를 지었다. 개성 뚜렷한 동기들과 농사짓는 건 무척 신나는 경험이었다. 주말에는 간디학교의 교사 양성 과정을 1년간 이수했는데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년 뒤 간디학교에서 농사와 과학 과목 담당 교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적정기술도 수업에 접목했다. 그가 첫 직장으로 남들과 좀 다른 대안학교를 선택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버지는 이상주의자라 꿈을 추구했던 분이셔서 뭐라고 안 하셨어요. 그에 반해 어머님은 현실주의자셨어요. 그래서 제 안에 이상주의자의 면모와 현실주의자 면모를 다 가진 거 같아요.” 아내와 함께 금산간디학교에서 근무하던 정씨는 2011년에 교장선생님과의 견해차로 학교에서 나왔다.

다음해 정씨는 인삼식품회사에 들어가서 일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처음으로 배웠다. 그는 적정기술 영상을 보면서 자신이 의미 지향적인 사람임을 알게 됐다.

“영상을 보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저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상을 제작한 곳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걸 알고 그도 참여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는데 마침 아내도 환경교육 석사과정을 밟고 싶다며 서울행을 제안했다. 입사 2년 만에 퇴사하고 서울로 왔다.

핸즈 작업장의 각종 기구 장비들. 강정민 작가

2014년에 ‘핸즈’의 사업자등록을 냈다. 처음 시작할 땐 셋이 공동 창업을 했지만, 세 명이 월급을 가져갈 만큼의 일이 들어오진 않았다. 정씨를 제외한 두 사람이 1년 만에 퇴사했다. 2016년에는 다양한 업체가 모여 있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이듬해 대안학교에 다니는 박범준 학생이 함께 일하면서 핸즈가 안정화되는 데 도움을 받았다. 2019년 <태양광 메이커 교과서>(보누스 펴냄)라는 책을 펴내면서 태양광에너지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 앞으로 책을 이(e)북으로 펴내서 좀 더 널리 배포할 계획이다. 혁신파크에서 5년을 보내고 지난해 노원구 공릉동으로 이전해서 마을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에 간디학교에서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지금 핸즈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강의를 가면 환경 교육하는 분들이 저보다 먼저 강의하는 경우가 있어요. 학생들에게 ‘뭘 배웠나?’ 물어보면 ‘선생님, 이제 우리는 망한대요. 저는 막 살 거예요.’ 이런 말을 해요.”

환경교육이 이런 식의 종말론적인 방법을 취하는 걸 그는 반대한다.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교육 방식은 교육심리학에서도 효과가 없다고 입증됐다. 환경교육은 해결책을 제시해 사람들에게 수동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고민하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학생들에게 해결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해 ‘꿈마을 와글와글 어린이축제’에서 자전거분수를 작동시키는 가족 모습. 정해원 대표 제공

핸즈는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환경교육, 적정기술 관련한 컨설팅과 함께 적정기술 관련 교구 판매도 해요. 수익 중에서 교육 비중이 50%로 제일 커요. 교육하러 가도 교구를 판매하진 않고 회수해 와요. 값싼 교구를 팔면 결국 쓰레기를 만드는 건데 그게 환경교육과는 맞지 않잖아요.”

학교 특강에서 학생들에게 값싼 교구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육업체들이 강사료보다 교구 판매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고 알려졌는데 핸즈는 그런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힘든 상황에서 핸즈가 10년간 사업을 이어온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시 핸즈가 사회적기업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는 걸까?

“저희는 사회적기업은 아니에요. 처음에 고민했는데 요건을 맞추는 것도 일이고 자립적으로 운영하고 싶었어요. 핸즈를 찾는 곳이 없어진다면 그리고 저도 이 일이 더는 재미없다고 느낀다면 그땐 그만둘 거예요.”

감사장과 표창장. 강정민 작가

그는 변화가 빠른 과학계에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한다. 일하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강의를 가면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학생이 있어요. 그럼, 그 친구들한테 먼저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무선 조종 자동차를 조종해보게 해요. 그러면 수업 끝날 땐 그 학생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해요. 그리고 고등학교 환경동아리 수업에서 학생들이 진지하게 환경이나 에너지 문제를 질문할 때면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어요.”

작년에는 여러 특수학교에서 적정기술 수업을 진행했다. 핸즈는 이렇듯 활동 영역을 조금씩 넓히고 있다.

과학이나 환경교육이 척박한 한국에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업체를 꾸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10년간 해낸 핸즈(http://handz.or.kr)의 구성원과 정해원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도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