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은 이승현, 제2의 전성기 맞을까?
‘그래도! 이승현이 있었다’ 시즌 개막전 KCC 이지스는 슈퍼팀으로 불리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이승현(32‧197cm), 최준용(30‧200.2cm), 송교창(28‧201.3cm) 등 국내 정상급 포워드 라인에 정창영(36‧193cm), 허웅(31‧185cm), 이호현(31‧182cm) 등 수준급 선수들이 한팀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에너지 레벨이 조금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라건아(35‧200.5cm)는 여전히 견적이 서는 빅맨이며 알리제 존슨(28·201cm) 또한 다재다능한 능력치를 갖춘 전천후 외국인선수다. 전준범(33‧195cm), 이근휘(25‧187cm)를 필두로 김동현, 송동훈, 서정현, 곽정훈 등 선수층이 차고 넘쳤다.
아시아 쿼터로 영입한 캐나다 필리핀 이중국적의 포인트가드 제프리 에피스톨라(27‧180cm)도 더 나은 활약이 기대됐다. ‘2개의 우승후보를 만들수있는 KBL판 레알마드리드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않은 이유였다. 아쉽게도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KCC는 이름값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44경기를 치른 현재 24승 20패(승률 0.545)로 5위에 올라있다. 7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경기차가 크게 벌어져있는지라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어렵지않아보인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정규시즌 우승 후보였음을 감안했을때 만족스러운 성적은 분명 아니다. 전력만 놓고 봤을 때는 시즌 우승 후보는 물론 역대급 왕조가 기대되는 라인업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지적되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도 예상밖 부진에 대한 갑론을박이 활발하다.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부상이다. 치고 나갈만하면 주축 멤버들이 부상으로 신음하며 이른바 완전체 KCC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가장 무서운 무기로 꼽히는 양날개 송교창, 최준용이 번갈아가며 부상으로 빠지거나 동시에 이탈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며 전창진 감독의 골머리를 아프게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가운데 최근에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송교창, 최준용이 부상으로 둘다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된 것이다. 순위 싸움으로 중요한 시기에서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KCC는 괜히 슈퍼팀이라고 불리는게 아니었다. 송교창, 최준용은 없었지만 이승현이라는 또 다른 특급 선수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강행군을 이어온 여파일까. 올시즌 이승현은 커리어로우를 맞고 있다. ‘두목 호랑이’라는 별명처럼 엄청난 활동량으로 종횡무진 코트를 누비며 상대를 공수에서 압박하던 위용이 많이 사그러진 상태다. 한창때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투지를 앞세운 수비력, 궂은 일은 여전하다.
문제는 공격력이다. 슈팅력이 급감하며 평균득점(5.9)이 뚝 떨어졌다. 커리어 내내 두자릿수 득점을 유지해왔으며 가장 안좋았을 때가 9.53득점이었음을 감안했을때 심각한 부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시스트, 리바운드까지 반토막이 났다. 그러다보니 상대팀에서는 이승현의 공격에 대해 예전처럼 부담을 느끼지않게됐고 KCC 또한 경기 운영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었다.
이승현에 대한 견제가 헐거워진 만큼 다른 선수들에 대한 압박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멘탈이 단단한 이승현도 자신감을 잃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영웅은 난세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은 팀이 어려울 때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안다. 집중력도 더 강해진다.
5일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고양 소노와의 원정경기가 그랬다. 이날 이승현은 공수에서 전방위로 뛰어다니며 특유의 에너지 레벨을 뽐냈다. 특히 그동안 부진했던 공격에서 크게 한몫했다. 30분 29초 동안 20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승현이 시즌 최다 득점을 폭발시킴에 따라 KCC 또한 공격력이 전체적으로 살아나며 117-85로 대승을 거뒀다.
누구보다도 승부욕이 강하고 팀에 헌신적인 성향상 현재의 부진이 가장 힘든 것은 이승현 본인이었다. 그는 승리후 인터뷰에서 "부진이 이어짐에 따라 처음에는 좌절감도 느끼고 그랬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어떻게하면 팀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고 현재 상황에 맞게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잘나갔던 베테랑이 적지않은 나이에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승현은 이를 받아들이고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않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은 흡사 과거 허재 감독 시절 ‘전주 들개군단’의 일원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임재현이 연상된다.
중앙대 전성시대를 이끌고 전체 2순위로 프로에 입성한 임재현은 대형가드 유망주였다. 여러 부분에서 전천후로 활약했고 이같은 능력을 인정받아 FA로 KCC의 러브콜을 받아 농구도시 전주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밖 부진이 이어졌다. 스피드, 체력, 슈팅, 패싱능력 등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개인 능력치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야, 볼간수 능력 등에서 단점이 더 두드러졌고 본의 아니게 혼자 팀 리딩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며 비난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심리적으로 흔들리며 잘하는 부분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임봉사’라는 치욕스런 별명까지 따라붙었다.
거기서 팀과 임재현은 결단을 내린다. 사용법을 달리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허감독은 임재현을 주전급 식스맨으로 보직변경을 했고 리딩보다는 단순하게 수비와 슛에 집중시켰다. 리딩부담을 벗어버린 임재현은 수비시에는 신명호, 강병현 등과 함께 KCC의 앞선 질식수비를 책임졌고 공격에서는 내외곽을 오가며 순도 높은 결정력을 보여줬다.
1번 출신 답게 보조리딩도 우수했다. 베테랑으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매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잘 알고 있었고 젊은 선수 위주였던 팀에 2% 부족했던 관록을 책임졌다. 비난은 삽시간에 환호로 바뀌었고 ‘제2의 전성기가 찾아왔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팀도 우승을 차지하며 임재현의 변신은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이승현은 임재현과 걸어온 길이 다르다. 하지만 본인이 느낄 정도로 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어떤 식으로 역할을 바꿀지는 알 수 없지만 성실함과 멘탈은 검증된 선수인지라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하다. 이승현의 또 다른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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