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Y] "한복만 입는다고?"…'파묘' 감독·김고은이 그린 'MZ 무당' 리얼리티

김지혜 2024. 3. 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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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장재현 감독은 영화의 소재를 정하면 무섭게 파고들기로 유명하다. 데뷔작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 '파묘'에 이르기까지 오컬트 장르 한 우물만 파온 장재현 감독은 신부와 목사를 거쳐 신작에서는 장의사, 풍수사, 무당의 세계를 이야기에 녹여냈다.

신작 '파묘'가 흥미로운 건 장의사, 풍수사, 무당이 '고스트 바스터즈'처럼 팀을 이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거액의 돈'이라는 이해관계로 뭉쳤지만 프로페셔널하게 한 집안에 일어난 불가사의한 일을 파헤치고 '험한 것'과 맞선다.

이 과정에서 2030 세대 관객의 흥미를 돋운 것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무당'이라는 캐릭터의 전복이다.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화림'과 이도현이 연기한 무당 '봉길'은 이른바 'MZ 무당'이다.

어떤 직업이든 시대의 흐름과 분위기를 탄다. 직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행하는 사람의 기운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화림은 할머니의 뒤를 이어 무당의 길을 간 경우다. 봉길은 야구선수를 꿈꾸다 신병을 앓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모두 장재현 감독이 취재를 기반으로 캐릭터에 사연을 부여한 경우다.

장재현 감독은 "취재를 하며 만나본 무당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고 전했다. 무속인의 연령대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지만 전성기는 30~40대라고. 그는 자신이 만나본 '요즘 무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 잘 나가는 젊은 무당들은 몽클레어 입고 포르셰를 타고 다닌다. 운동화도 에어 있는 걸 신더라. 오래 떠있어야 되니까.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분위기다. 영화에서 서로 '무속인은 발랑 까졌고 하고 장의사는 꼰대'라고 한다. 그러나 구세대와 신세대들이 서로 힘을 합쳐 아이들(후세대)이 살아갈 터전을 청소하고 땅의 의미까지 지켜주기도 한다"

'파묘'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두 무당의 '룩'(look)이었다. 포르쉐를 타고 등장한 화림은 르메르의 버건디색 가죽코트를 입었다. 패션쇼 런웨이에 서야 할 것 같은 화려한 패션이었지만 화림이 발을 디딘 곳은 음습하고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시골의 산자락이었다. 화림은 여우들의 매서운 시선을 자신의 기로 이겨내며 산을 탄다.

봉길은 상반신 전체를 문신으로 도배를 한 화려한 외모를 자랑한다. 경문을 연상시키는 한자지만 문신을 즐기는 것도 일부 MZ세대의 취향을 반영했다.

물론 '파묘'는 'MZ 무당'의 힙함만을 내세운 건 아니다. 직업의 이미지를 뒤집고, 트렌디함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적 열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일반인들이 가늠할 수조차 없는 그들의 영험한 능력이 등장하며 때에 따라 분출되는 광기 또한 오싹함을 자아낸다.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한 김고은은 '대살굿'(살을 대신하는 굿. 피를 흘리며 죽어간 군웅신을 대접하고 험한 일을 막아달라는 의미로 동물을 죽여 신에게 바침) 장면을 통해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한복에 컨버스 운동화를 신은 김고은은 칼로 돼지의 살을 가르고 자신의 뺨을 그은 뒤 돼지의 피를 마신다. 화림의 믹스매치 패션은 MZ스러웠지만 굿의 행위는 전통을 따랐다.

장재현 감독은 "영화에서 굿 장면이 나오면 비주얼만 보여주면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영화에서는 굿의 목적을 보여주는게 중요했다. 대살굿은 이것저것 해봐도 안될 때, 즉 저승사자가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보는 굿"이라고 전했다.

화림이 영화에서 하는 행위들에는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다. 장재현 감독은 "화림은 파묘 중인 일꾼을 보호하기 위해 신을 받는 퍼포먼스를 하는 거다. 자신의 몸주신을 부르는 과정이다. 몸주신이 몸에 들어왔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 몸에 칼을 대거나 불에 손을 집어넣는다. 신이 제 몸에 완전히 들어온 걸 확인하고 나서야 피를 먹고 웃는다. 몸주신한테 비타민C를 먹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몸주신은 맛있고 영양가 높은 걸 먹은 뒤 좋으니까 웃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살린 김고은이 연기가 놀랍다. 김고은 "무속인의 포스나 아우라가 사소한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화제의 대살굿 신은 '만신' 고춘자의 며느리인 무속인에게 배웠다.

"굿이나 경문 읊는 것처럼 큰 퍼포먼스를 잘 해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굿을 준비할 때 몸을 살짝 떤다거나 목을 꺾는 등 디테일한 동작을 크게 관찰했다. 그리고 원래는 없었던 부분인데, 무속인 선생님들이 휘파람을 많이 부시더라. 휘파람은 왜 불고 몸은 왜 떠는지 하나하나 물어보며 연기에 임했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지론에 따라 흉내내기가 아닌 재현에 집중한 것이었다. 대살굿의 진입이라고 할 수 있는 경문을 외는 장면은 김고은에게 가장 어려웠던 연기였다. 경문을 욀 때 타는 음은 대체로 무당들의 애드리브였기 때문이다.

김고은은 "마지막까지 연습하다고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선생님에게 한 세 번 정도만 처음부터 끝까지 해달라고 부탁해 녹음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그중 내가 가장 잘 탈 수 있는 음들을 노래처럼 통으로 음을 외우기로 한 거다. 그래서 통째로 외웠다"라고 밝혔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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