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업영화 35편 중 여성 감독 작품 1편 뿐…여성인력 상업영화 진출 장벽 여전
지난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한 편에 그치는 등 영화계 성평등이 퇴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팬데믹 이후 극장가 불황이 계속되면서 기존 상업영화시장에서 남성중심 창작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데 따른 결과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국제 여성의 날’을 앞둔 7일 이같은 내용의 ‘2023년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의 한국 상업영화 중 여성은 <교섭>의 임순례 감독 1명(2.7%)뿐이었다. 2022년 3명(8.1%), 2021년 2명(11.1%), 2020년 4명(13.8%)에 이어 4년 연속 비중이 줄었다.
감독 외 여성 제작자(22명·23.9%)와 프로듀서(13명·23.6%), 주연 배우(9명·25.7%)는 비중은 전년도에 비해 소폭 증가했으나 모두 30%를 넘기지 못했다. 각본가(12명·21.8%)는 2022년(13명·23.6ㄴ)보다 줄었고 촬영 감독은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0명이었다.
영진위는 팬데믹 이후 이어진 영화계 위기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23년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팬데믹의 그늘 아래 놓여 있었다. 회복에 대한 기대는 커졌지만 박스오피스는 양극화됐다”며 “고예산 영화에 남성 창작 인력과 남성 중심 서사가 집중되는 경향은 심화됐고 여성 인력의 상업영화 진출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영화의 잇따른 흥행 실패로 투자가 위축되면서 이같은 성별 불균형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내다봤다.
다만 조사 대상에 저예산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를 포함시키면 여성 비율은 높아진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183편 가운데 여성 감독은 49명(22.8%)이다. 여성 제작자(77명·24.8%), 프로듀서(71명·31.0%), 주연배우(81명·40.7%), 각본가(67명·30.7%), 촬영 감독(18명·8.1%)의 비율도 고예산 상업영화보다 소폭 높았다.
보고서는 “고예산 상업영화 외 저예산 및 독립·예술영화에서 늘어난 여성 감독의 참여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통상적인 감독의 경력 발전 단계를 생각해볼 때 여성 감독의 상업영화 진출이 가로막힌 상황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상업영화에서의 성비 불균형은 스크린 위 여성 및 다양성의 재현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3년 상업영화의 여성 주연 비율이 증가하며 백델 테스트(영화 속 성평등 지표)를 통과하는 비율은 전년 대비 소폭 늘었다. 그러나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다양한 인종 및 국적의 캐릭터가 여전히 정형화된 틀 안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영진위는 “한국영화의 질적 차원의 다양성 증진을 위해서는 양적 차원의 균형감 있는 개선이 함께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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