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날' 주간에 듣는 '젊은 여자라 안 된다'는 말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김신영씨의 하차를 두고 나흘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보도프로그램도 아닌 오락프로그램 진행자 한 명 교체에 이토록 논란이 무성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22년 8월 ‘최초 여성 MC 발탁’이라며 떠들썩하게 김씨 낙점 소식을 전했던 KBS는 1년 반 만에 교체 사실을 알리며 더 큰 소란과 잡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교체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진행자 결정은 제작진의 권한이고, 새 진행자를 물색하는 건 개편 철 방송가에선 흔한 일이다. 다만 교체 이유가 시청률(청취율)이 됐건, 출연료(제작비)가 됐건, 아니면 프로그램의 성격 변화가 됐건, 제작진과 진행자, 그리고 시청자(청취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상식이다.
이번 김씨 교체는 그런 ‘상식’에 반해서 일어났다. KBS가 여태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으므로 지난 4일부터 다수 언론 보도에서 확인된 사실만 종합하면, 김씨는 마지막 한 회차 녹화를 앞두고 제작진에게 하차를 통보받았고, 그 제작진 역시 진행자 교체 결정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진행자로 남희석씨가 낙점됐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교체 소식에 그 배경을 두고 여러 말이 나왔다. 낮은 시청률 때문이라는 둥 김씨가 전임 대통령이 선물한 시계를 자랑해서 미운털이 박혔다는 둥 그럴듯한 분석과 근거 없는 추론이 뒤섞였다. 고 송해씨가 진행하던 시절보다 시청률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6개월 평균 5% 안팎으로 안정적인 편이며, 여전히 동 시간대 1위다. 코로나19로 인한 장기간의 공백,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던 송해씨의 부재 등을 감안하면 2010년대 이전과 같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4일 텐아시아는 김씨가 교체 사유로 “젊은 여자 MC는 (프로그램 특성에) 맞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후임으로 ‘50대 남성’인 남희석씨가 낙점된 것도 같은 맥락이란 것이다. 김씨가 ‘젊은 여자’여서 어울리지 않는다니, 전국노래자랑이 ‘늙은 남자’ 혹은 ‘노인’ 취향이란 걸 자인하는 걸까. 가뜩이나 KBS 주 시청층의 고령화가 매년 경영평가에서 개선할 문제로 지적되는데, ‘집토끼’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일까.
김씨에 대한 불만 여론이 있었던 걸 모르지 않는다. 김씨가 진행을 맡은 2022년 10월 이후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엔 ‘김씨와 프로그램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이럴 거면 폐지나 하라’는 글이 드문드문 10여건 올라왔다. 하지만 김씨 하차 소식이 알려진 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김씨 하차에 반대하거나 최소한 그 이유라도 알려달라며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있음을 KBS는 뼈아프게 자각해야 한다. 김씨가 지난해 3월 시청자들이 뽑은 ‘KBS를 빛낸 50인’의 하나로 선정됐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의 KBS는 그때와 다르다. 당시 김씨에게 꽃다발을 안겼던 사장은 해임됐고, 후임으로 임명된 박민 사장은 취임 당일 ‘지상파 최초의 여성 메인앵커’였던 이소정 앵커를 자리에서 내쫓고 역시 ‘50대 남성’ 앵커를 기용했다. 4년간 앵커석을 지켰던 이소정 기자는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박민 사장 취임 후 이렇게 갑작스럽게 진행자가 교체되거나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일이 줄줄이 일어났고, 그중 상당수가 여성이 메인 진행자였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전 국민에게 동일한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 KBS가 이렇게 특정 세대나 성별을 위하거나 배제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혹 이런 결정이 사장부터 부사장, 본부장, 센터장에 이르기까지 경영진 전원이 ‘50대 이상 남성’으로 채워진 것과도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KBS를 관리 감독하는 KBS 이사회에 전체 11명 중 여성 이사는 단 한 명이란 사실도 말이다.
국제 여성의 날(3월8일) 주간에 ‘젊은 여자라서’라는 말을 듣고 씁쓸하던 차,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박민 KBS 사장이 공사창립 5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며 3대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묻고 싶다. 박민 사장이 섬기겠다는 그 ‘국민’에 ‘젊은 여성’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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