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이미 혼란, 한반도는 싸우면 안돼"…中왕이의 훈수
대만에는 독립 반대 외치면서도 '가족사진' 언급…
11년째 외교부장, 조만간 온건파 교체설 나돌아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장관)이 이번 양회(兩會)에도 기자들 앞에 섰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입장을 낸 그는 대화로 긴장을 풀 것을 요구했다. 11년째 외교부장인 그는 양회 이후 교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데 후임도 온건한 인물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늑대처럼 물어뜯는 중국의 이른바 '전랑외교'가 종식되는 분위기다.
욍 부장은 7일 양회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를 계기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근본적인 길은 평화 협상을 재개해 당사자, 특히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급선무는 위협과 압박을 중단하고 번갈아 상승하는 대결의 나선(螺線)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결국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결해야 한다는 왕 부장의 발언은 한반도 긴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주체가 북한이라는 해석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대북 압박 강도를 낮추고 전향적 태도로 대화에 임해야만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왕 부장은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한반도에서 싸움과 혼란이 더 만들어져서는 안 되며 이는 중국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한반도 문제의 근원은 냉전의 잔재가 여전히 존재하며 시종일관 평화 메커니즘을 구축하지 않았으며, 안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방전은 이미 만들어져 있으며, 이는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와 북미평화협정 동시 추진)과 단계적·동시적 원칙"이라며 "누구든 한반도 문제를 통해 거꾸로 가는 차를 몰고자 한다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한반도 문제 개입을 경계하는 발언이다.
왕 부장은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대만이 조국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만 선거는 중국의 지방선거일 뿐이며 선거 결과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 대만에서 독립을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역사에 의해 청산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조만간 국제사회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준수하는 '가족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통일전략을 가족에 비유하는 등 특유의 부드러운 톤을 유지했다. 여러모로 지난해 면직된 친강 전 외교부장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왕 부장은 과거 10년간 외교부장을 지내다가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으로 영전했지만, 전랑외교의 상징인 친 전 부장이 지난해 갑작스레 면직되면서 다시 외교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외교부장만 11년째다. 외교부장 자리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겸임 구조가 계속 지속될 수는 없다.
그래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양회를 계기로 왕 부장을 교체할 거라는 설이 돌았다. 후임으로 류젠차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번 회견을 왕 부장이 주재하면서 신임 외교부장 임명도 일단 늦춰질 전망이다. 오는 11일 막을 내리는 양회 기간 안에 임명될 가능성도 있다.
왕 부장에 이어 류 부장이 신임 외교부장에 오르게 되면 중국의 전랑외교는 사실상 막을 내릴 전망이다. 외교부장의 발언 내용은 시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당이 결정하지만, 어떤 이미지의 인물을 내세우느냐 자체가 큰 대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미국과 갈등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미국 대선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유연한 외교적 스탠스를 취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류 부장은 20대 시절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유학하는 등 서방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전랑외교에 대한 질문을 받자 "중국이 압박을 받을 때 우리는 투지를 발휘하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은 전세계 친구들과 사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올 초 미국을 방문했을때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재편을 추구하진 않는다"고도 말했다. 친강의 강경 발언과는 완전히 톤이 다르다.
왕 부장이 당분간 외교부장직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양회 이후 호주를 방문해 민감한 현안을 논의할 거라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는데, 호주 방문까지는 외교부장 타이틀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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