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장재현 감독이 털어놓은 숨은 의도와 장면마다의 의미 (스포있음)
어제까지 6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주말에 7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는 영화 '파묘'의 스페셜 GV가 어제 영등포 CGV에서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과 절친인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주성철 모더레이터와 함께 자리했다. 벌써 N차 관람객이 줄을 이을 정도로 대중성과 마니아층을 고루 겨냥하고 있는 이 작품의 장면마다 장재현 감독이 숨겨 놓은 의도와 비의도를 파헤치는 시간이었다.
아직 '파묘'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이후에 나오는 내용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기사를 스킵하시길 권한다. 하지만 '파묘'를 봤던 관객이라면 당신의 추측이 맞는지 찬찬히 짚어 보시길.
Q.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과 장재현 감독의 '파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A. 두 영화가 이모개 촬영 감독, 이성환 조명 감독이 참여한 작품이다. 이모개와 이성환, 두 감독 모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분인데 리얼리티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으신 분. 김성수 감독에게 추천을 받은 장재현 감독이 이 두 분을 모셔오려 했는데 '서울의 봄' 촬영이 예정보다 한 달이나 늦게 끝나는 바람에 '파묘'도 한 달 동안 촬영을 못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고. 이모개, 이성환 감독에게 딱 이틀의 휴가 시간을 주고 '파묘' 촬영을 시작했는데 두 분 모두 "구해줘서 너무 고맙다. 군대에 다시 간 기분이었다"는 말을 장재현 감독에게 했다고. 하지만 '파묘'의 촬영을 몇 달간 하더니 "다시 군대를 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단다.
Q. 이모개 촬영감독은 장재현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어떤 소감을 밝혔나?
A. 장재현 감독과 미팅 후 김성수 감독에게 "저 감독은 자기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고 표현하고 싶은 걸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더라. 저 감독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저 사람의 카메라가 되고 싶다"는 말을 이모개 감독이 했다고 한다.
Q. 장재현 감독의 전작 '사바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는데 '파묘'에서도 김고은이 병원에서 "겁나 험한 게 나왔다고"라고 말하는 단 한 장면으로 화림의 성격, 그녀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등의 태도도 보이더라. 어떻게 이런 장면들을 만들어 내나? (김성수 감독이 한 질문)
A. 연출할 때 배우들에게 연기적 침범을 안 하려고 하는 편. 안 풀릴 때 도와주는 개념으로만 하고 있다. 대신 시나리오를 쓸 때 엄청 고민을 많이 한다. 욕심도 많고 효율을 중요시 여기는 성격이라 한 씬 안에 캐릭터 설명도 되고, 공간도 설명이 되고, 상황도 설명이 될 수 있도록 압축하는 편이다. 한 씬 한씬을 그런 고민을 하며 시나리오를 쓴다. 그리고 캐스팅을 할 때는 날라리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다. 제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전문가인데 그 전문가들이 양아치스러울 때 저는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 날라리같이 보이는 전문가를 잘할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게 되니 씬들이 잘 살아나는 것 같다.
Q. MZ무당인 화림봉길의 케미가 인기다. 두 사람의 스타일링도 좋았고 대살굿 하기 전 운동화의 끈을 매주는 장면도 인기다. 이런 걸 계획하고 만들었나?
A. 반은 얻어걸린 것. 저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지하철을 봐도 신발과 바지 끝을 보고 사람의 얼굴을 상상한다. 그리고 실제 무속인을 만나면 신세대 무속인들은 포르셰를 타고 다니는데 트렁크 안에 징이랑 장구가 들어있더라. 진짜 몸에 문신도 하고 다니고 일할 때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등장하더라. 그런 관찰을 하다 보니까 화림, 봉길 같은 캐릭터들이 나오게 된 것. 화림봉길의 텐션은 저도 좋아하는 부분. 일부러 그런 텐션을 더 살리고 싶어서 편집할 때 신경을 더 썼다.
Q. 영화 속에 숨겨 놓은 장면이 많을 텐데 지금 관객들이 잘 찾아보고 있는 중인가?
A. 그런 게 있는데 요즘 너무 상처를 받아서 리뷰를 못 보겠다. 이 영화는 유독 내가 되게 좋아하는 부분을 다들 되게 싫어하시더라. 그래서 리뷰를 웬만하면 안 보려고 한다. 암튼 배경마다 귀신을 많이 숨겨놨다. 그걸 관객들이 어디까지 찾아봤는지 모르겠다.
Q. 도깨비불이 나오는 시퀀스부터 붉은 톤의 조명을 많이 쓰더라. 일본 정령이 나오면서부터는 영화가 붉은색 기운이 감돌고 지옥 같은 분위기로 영화를 지배하는 느낌이 가더라. 그리고 정령을 소멸시킨 이후에는 원래의 푸른빛으로 돌아왔다. 이런 조명도 의도한 것인가?
A. 이것도 반은 얻어걸렸고 반은 의도했던 것이다. 정확하게 붉은 조명을 이어가자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음양오행을 영화에서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오행인 물, 불, 나무, 쇠, 흙이 나오는데 흙은 앞부분에서 엄청 많이 보여줬다. 그다음에는 물을 많이 보여줬다. 비도 오고 사람들은 젖어있고 수영장도 나오며 물도 많이 보여줬다.
그다음부터는 불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도 드럼통에 불 피워놓고 하고, 법당 안에도 전기난로를 켜 붉은빛이 나왔고 별체 안에서 가위에 눌려 잘 때도 보면 전기난로를 켜고 잔다. 돼지 축사에서도 붉은빛이 나오는데 그건 정말 얻어걸렸다. 돼지 축사가 빈 축사였는데 촬영을 위해 전날 돼지들을 옮겨왔다. 돼지들이 추운 날씨에 취약한데 그래서 돼지들이 추울까 봐 온열 설치를 해놨는데 그게 붉은색이었다. 조명 감독이 밤 신을 어떻게 찍을까 보다가 그냥 그 조명 그대로 쓰는 게 좋겠다 해서 찍은 것.
엔딩 시퀀스에서 보면 한밤중 산 꼭대기의 구덩이가 나오는데 여기서의 조명은 엄청 고민이 많았다. 헤드라이트를 쓰고 연기를 시킬지, 달빛 아래라는 설정으로 연기를 시킬지 고민하다가 그때 이성환 조명감독이 아이디어를 냈다. 도깨비불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온 것이니 구덩이 속이 지옥처럼 지글지글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구덩이에서의 엔딩컷을 찍을 때는 카메라 렌즈 앞에 토치로 불을 피워서 화면이 살짝 일렁이는 효과를 줬다. 사운드도 지글지글 부글부글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넣었다. 그러며 정령이 죽었을 때 그런 소리나 효과가 없어지면서 차가운 톤으로 확 돌아오고 그제야 관객들은 '여기가 방금 전까지 지옥이었구나'라는 느낌을 들 수 있게 디자인했다.
보통 그런 느낌을 주려면 일반적인 조명감독이라면 그런 느낌의 조명을 쓸 텐데 이모개 촬영 감독이나 이성환 조명감독의 경우 실제 불을 피우더라. 레디 하면 조명을 켜는 게 아니라 불을 피워야 하니까 시간도 더 걸리고 번거로왔는데도 진짜 광원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었다.
Q. 도깨비 불도 진짜 불이었나?
A. 한 70~80%는 진짜 불이고 나머지가 리터치다. 불 속에서 얼핏 보이는 기계나 와이어들을 지우는 정도만 CG를 썼다.
Q. 편하게 말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의도하신 설정인가?
A. 처음에는 이 영화를 유령영화로 만들려 했다. 미국의 박지용이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이고 무속인과 풍수지리사가 나와 갈등을 일으키는 영화로 기획을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오고, 그때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극장에서 와서 체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생각을 하면서 영화의 50%가 바뀌어버렸다. 뱀파이어 영화라 생각하고 찍었다.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반응이 있던데 저는 사실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저는 땅을 파는 순간부터 과거로 가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깊이 팔수록 더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 일 뿐이었다. 친일파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다음에 임진왜란이 나오는 것일 뿐. 그런데 개봉을 하고 나니 제 생각과 다른 관점으로 보시는 분들이 계시더라.
Q.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이 나오더라. 여러 종교가 원만하게 공존해야 한다는 게 종교다원주의라는데, 장재현 감독이 볼 때 한국은 종교다원주의가 잘 되어 있나? 한국은 종교의 갈등이 큰 문제다. 그런데 장감독의 작품에는 다양한 종교가 등장한다. 그 이유는?
A. 저는 종교를 소재로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휴먼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좀 더 들여다보기 위해 종교를 통해 보는 것이다. 종교는 제가 재미있어하고 많이 써먹는 소재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기독교인데 집안 환경이 독특하다. 가족이 다 모이면 무속인도 있고 신부님도 있다. 어려서부터 이상한 환경들을 많이 보기도 하고 만났던 사람도 많으니 그걸 써먹는 편이다.
Q. 지금 기독교 집사인데 종교 이야기를 할 때 완전히 객관적인 시선에서 하게 되나?
A. '사바하'의 경우 기독교인이 본 불교의 신비로움을 다루려 해서 일부러 주관적으로 찍었다. 주인공이 목사이니까 그 시점으로 가는 게 맞았던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을 잘 몰라서 엄청 공부하면서 만들었다. '파묘'는 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영화라 생각한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장로님이 실제 장의사이기도 하시다. 그 캐릭터 때문에 종교와 관련 있다고 오해를 하시는 것 같다.
Q. '파묘' 초반의 이장 장면에서 할머니의 틀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감독님 개인의 경험담이라고?
A. 그렇다. 실제 돌아가신 할머니의 틀니를 보관했었는데 휴지로 말고 손수건에 묶어서 보관했다.
Q. 정령의 정체는 칼인가? 투구인가?
A. 묘에서 칼이 발견된다. 실제 일본 무속인들은 원한이 있는 사람의 시신에 칼을 꼽아놓기도 했다더라. 이 장수의 몸속에 칼을 넣어 칼이 정령이 된 것이다. 굳이 말하면 장군의 시체가 칼과 합쳐져 정령화가 된 개념인데, 물리학적으로 접근하면 잘 이해가 안 될 것.
Q. 화림 봉길 서사 중 삭제된 부분이 있는지?
A. 하림이 봉길을 야단치는 장면이 있었다. 뭔가를 할 때 '그때처럼 하면 혼난다' 같은 대사가 있어서 좀 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영화의 속도감을 높이다 보니 대사를 편집하게 됐다.
Q. 일본 음양사와 관련된 내용은 많이 생략되었는데 혹시 프리퀄이나 속편으로 만들어질 계획은 없는지?
A. 없다. 제가 음양사라는 만화를 너무 좋아한다. 제 인생 만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음양사의 존재를 빌런으로 너무 정확하게 묘사를 해 버리면 좋은 편, 이쁜 편이 생겨 영화의 로직이 깨지게 된다. 저는 반일적인 요소로 음양사를 넣은 게 아니라 우리 땅에 있는 나쁜 뭔가에 집중을 했고, 그것의 부연설명으로 잠깐 나온 게 음양사. 이 영화에 이데올로기가 담기는 건 저희가 의도한 게 아니라서 음양사의 이야기를 많이 담지 않았다.
Q. 영화를 기획할 때는 있었지만 끝내 세상밖에 나오지 못한 장면은 뭐가 있나?
A. 영화의 전반부에 하드 한 장면이 많았다. 혼령이 누구를 죽이는 방식이라든가, 영화 속 고모는 살아남지만 원래는 고모에게도 할아버지 귀신이 찾아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운 좋게 사는 장면이 있다. 그다음 박지용과 봉길에게 할아버지 귀신이 동시에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박지용이 했던 연설과 행동을 봉길도 똑같이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넣으면 영화 후반부에 기력이 빠지게 돼서 못 넣었다. 그냥 1,2편으로 만들어서 개봉할걸 그랬나?
Q. 박지용을 연기한 김재철 배우 너무 괜찮더라. 어떻게 캐스팅했나?
A. 목이 잘 돌아서 캐스팅했다고 농담으로 말했는데 실제로 목이 잘 돌아가서 CG 한컷 정도 만들 비용은 벌었다. 원래 그 역할에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와 조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너무 안 맞아 우리 스케줄이 어그러지겠더라. 김재철은 두 번째 후보였는데 이 배우는 원석 같은 배우라 생각했다. 이제 뭔가 한번 탁 터트릴 때가 된 무르익은 느낌이어서 캐스팅을 했다.
Q. 봉길이 병실에서 화림과 다른 무당들이 도깨비 놀이를 할 때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더라. 이들의 평소 말투는 사투리가 아닌데 도깨비 놀이할 때 사투리를 쓰는 이유는?
A. 무속인들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근데 평소에 말할 때와 달리 가끔 이 사람이 30대인데 왜 할머니처럼 이야기 하나 싶을 때가 있더라. 어느 날 무속인 선생님 집에 갔는데 중학교 1학년 정도되는 남자아이가 갑자기 저한테 조선시대 할머니 말투로 "너, 겸손해라"라고 하더라.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이게 간지구나' 생각해 시나리오를 쓸 때 사투리로 썼다. 김선영 배우는 서울말을 못하는 배우라 경상도 사투리를 하셨고 김고은은 '변산'때 전라도 사투리를 한번 해봐서 걸쭉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전라도 사투리를, 김지안 배우는 충청도 사투리를 하게 되었다. 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데 할머니들이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Q. 봉길이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장면이 특이했다. 죽은 귀신이 타고 올라가 밟는데 손가락으로 뭘 쓰더라.
A. 원래 가위에 눌렸을 때는 손가락 끝부터 움직이면 깰 수 있다는 설이 있었다. 무속인 선생님들에게도 물어보니 자기들도 가위눌렸을 때 손으로 글씨를 쓴다더라. 그래서 물리칠 퇴를 적는 걸로 이도현이 연기했다.
iMBC 김경희 | 사진 iMBC DB | 영화사진출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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