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보다 웜업존이 익숙했던 지난 1년… 송명근은 ‘왕년의 거포’로 잊히지 않기 위해 칼을 갈아왔다

남정훈 2024. 3. 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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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프로배구 우리카드의 아웃사이드 히터 송명근(31)의 전성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경기대 시절 세터 이민규, 아웃사이드 히터 송희채(이상 OK금융그룹)과 함께 ‘경기대 3인방’으로 불렸던 송명근은 2013~2014시즌 제7구단이 된 OK금융그룹의 창단멤버로 프로에 입성했다. 세 선수의 존재 덕분에 OK금융그룹이 창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 선수는 대학 시절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송명근은 2년차였던 2014~2015시즌 OK금융그룹의 챔프전 우승의 주역이었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송명근은 이듬해 OK금융그룹의 챔프전 2연패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송명근의 입지는 좁아졌다. 빼어난 공격력에 비해 다소 아쉬운 수비력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던 중 학폭 이슈가 터졌고, 송명근은 빠르게 폭행 사실을 인정한 뒤 2021년 7월 군입대를 했다. 지난해 1월 군복무를 마친 뒤 복귀했지만, 실전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지난 시즌을 마치고 절친한 친구 사이인 송희채와 맞트레이드되어 OK금융그룹을 떠나 우리카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우리카드에서도 송명근의 자리는 코트 위가 아닌 웜업존이었다. 공격력은 여전히 현역 최고 수준이지만, 리시브나 수비가 약해 중용 받지 못했다.

코트 뒤에서 칼을 갈던 송명근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카드의 외국인 선수 마테이 콕(슬로베니아)이 지난달 6일 훈련 도중 발목인대 파열을 당해 시즌아웃을 당한 것. 팀의 전체적인 화력이 떨어지자 신영철 감독은 송명근을 ‘분위기 메이커’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2일 한국전력전에서 우리카드 이적 후 처음 선발로 나선 송명근은 정규리그 우승의 향방이 걸린 6일 대한항공전에서도 선발로 나섰다. 신 감독은 “(송)명근이의 스윙은 한국 최고다. 그의 공격과 서브능력을 믿는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신 감독의 말대로 송명근은 공격과 서브로 대한항공 코트를 초토화시켰다. 1세트 초반 서브에이스 2개를 터뜨리며 감을 조율한 송명근은 2세트 중반 11-11에서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아웃사이드 히터 듀오 곽승석과 정지석에 리베로 오은렬까지 서브로 모두 무너뜨렸다. 송명근의 첫 서브에 곽승석은 그대로 얼어붙어 에이스를 허용했고, 두 번째 서브를 받은 정지석의 리시브는 그대로 우리카드 코트로 넘어가 아르템(러시아)의 다이렉트킬로 연결됐다. 세 번째 서브를 받은 오은렬의 리시브는 세터 한선수가 아닌 코트 바깥으로 벗어났다. 여봐란 듯이 대한항공의 리시버 셋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공격에서도 특유의 빠른 팔 스윙을 앞세워 호쾌한 강타가 연이어 대한항공 코트를 폭격했다. 공격 성공률 자체는 44.12%로 높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을 냈기에 순도는 높았다. 서브득점 4개 포함 팀내 최다인 19점을 터뜨린 송명근의 활약을 앞세워 우리카드는 대한항공을 세트 스코어 3-0(25-21 27-25 25-23) 셧아웃으로 깨뜨렸다.
이날 승리로 승점 3을 추가한 우리카드는 승점 66(22승11패)로 대한항공(승점 67, 22승12패)을 승점 1 차이로 추격했다. 2경기를 남겨둔 대한항공이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쌓을 수 있는 승점은 73. 우리카드가 남은 3경기에서 승점 8을 쌓는다면 역전 우승이 가능하다. 반면 통합 우승 4연패를 노리는 대한항공은 자력으로 정규리그 4연패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당연히 송명근은 경기 뒤 수훈선수로 인터뷰실을 찾았다. 그는 “정말 중요한 경기였기에 집중력이 남달랐던 것 같다. 초반부터 집중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항상 벤치나 웜업존보다는 코트 위가 익숙했던 그에게 지난 1년은 힘든 시간이었다. 송명근은 “코트 뒤에서 준비할 때와 선발로 뛸 때는 기분도 다르고, 마음가짐도 다르다. 코트 뒤에서 시작할 때는 팀이 핀치에 몰렸을 때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 역할이다. 선발로 들어갈 때 먼저 들어간 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줘야 한다.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최선을 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주전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제가 리시브나 엉뚱한 범실이 꽤 나와서, 실력적으로 부족해서 뛰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제가 처져있거나 웜업존에서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선배로서의 역할이 아닌 것 같아서 밖에서 열심히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2세트 중반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리시버 셋을 보란 듯이 무너뜨린 장면에 대해 묻자 송명근은 “사실 한명, 한명한테 일부러 치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서브 토스와 영점을 잡는데만 포커스를 맞췄다. 때리고 나서 누구한테 간지도 몰랐다”라면서 “감독님이 경기 전 저희에게 ‘우리가 공격적으로 하지 않으면 역으로 당한다’라면서 서브를 공격적으로 밀어붙이자고 주문하셨다. 거기에 부응한 것 같아 기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브는 연습한 대로 잘 들어갔지만, 공격에선 범실이 꽤 나와서 세터인 (한)태준이에게 미안했다. 태준이가 ‘형이 하던대로 리듬을 찾아요’라는 말이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우리카드에는 송명근만큼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선수가 없다. 앞으로 남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송명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그는 “정규리그 우승의 기회가 저희 손에 들어왔다. 허무하게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진 않다. 남은 3경기를 다 잡고 정규리그 우승을 해보겠다. 저도 챔프전 우승 두 번을 해봤지만, 정규리그 우승은 해보지 못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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