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MC’와 ‘일요일의 막내딸’ [플랫]

플랫팀 기자 2024. 3. 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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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을 하면 오리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벌을 받았다. 언덕 밑에서부터 학교 본관 건물이 있는 곳까지 쪼그려 앉아 귀를 잡고 걸으면 30분이 걸렸는데, 가장 큰 고비는 언제나 마지막 10분 코스였다. 마지막 고지를 오를 땐 교문 너머 건물이 보였다 말았다 했다. 눈앞에 끝이 보이면 초인적인 의욕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늘 그 지점에서 맥이 풀리곤 했다. 엉덩이를 옮기려 몸을 일으킬 때마다 건물 정면에 붙은 문장이 보이던 탓이었다. ‘참되고 어진 어머니가 되자.’ 여기서부터 스무 걸음. 눈 딱 감고 조금 더 기어가면 되는데 나는 번번이 교문 앞에서 주저앉았다. “선생님 못하겠어요. 이게 제 한계예요.”

시간 안에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구령대에 일렬로 서서 다시 손바닥을 맞았고 선도부가 벌점도 매겼다. 이미 온몸이 후들거려 걸을 수도 없는데 폭행도 당하고 전과까지 생기다니 지나치게 가학적인 것 아닌가? 온갖 불만을 터뜨리며 교실로 이동할 땐 늘 창밖엔 같은 재단의 남학교가 보였다. 열을 맞춰 운동장을 뛰고 있는 무리가 저 학교의 지각생들이겠구나.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 풍경을 응시하면 이내 건물에 붙은 표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질서 있고 창의적인 국민이 되자.’ 우리는 어머니고 너희는 국민. 동질감이란 뒤를 돌아서면 꺼지는 거품 같은 것이었다.

KBS <전국노래자랑> 홈페이지

우리 할머니는 아흔이 넘어 손자 손녀 이름을 헷갈릴 때에도 송해와 강호동은 알아봤다. ‘송해 그 양반이 아직 사회를 보나.’ ‘자는 안다. 호동이 아이가.’ 나는 힘없이 웅크린 채 여생을 보내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왠지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말 뒤에는 응당 “전국노래자랑!”과 “일박~ 이일!”이란 외침이 이어져야 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국을 떠돌며 ‘국민 여러분’을 외치던 두 남자에게 ‘국민MC’라는 타이틀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 나라의 ‘국민’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건데, 언덕을 오르며 고뇌를 강제하던 체벌은 오랫동안 내 몸에 남아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인지를 끝없이 생각하게 했다. 나는 국민. 무대에 게스트로만 초대될 수 있는 국민. 아가씨, 아줌마, 손녀가 되어 그에 부합하는 역할을 해내면 되는 국민. 전국 팔도에서 웃고 우는 남자들을 구경하는 국민. ‘요정’이나 ‘여신’이 아니라면 감히 그 세상을 넘볼 수 없는 국민.

2023년 KBS는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아 특집방송을 기획했다. 프리젠터로 나선 강호동은 ‘국민의 방송’으로 KBS를 호명하며 “‘국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영광”을 자신의 지난 출연 작품들과 나란히 두고 다시 “국민 여러분들께 더 큰 즐거움으로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KBS를 빛낸 50인’을 기리는 그 기념식에는 <전국노래자랑>의 새 진행자 김신영도 포함되었다. 김동건, 최불암, 유동근, 윤석호 등 남성 출연자들 사이에서 그는 “KBS가 100주년을 맞으면 <전국노래자랑>의 왕할머니가 되어 이 자리에 함께하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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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이 ‘일요일의 막내딸’이 되었던 1년6개월 전, 나는 내가 사랑하는 텔레비전 속에서 비로소 내가 ‘참되고 어진 어머니’가 아닌 ‘국민’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나는 그 기쁨에 꽤나 고무되어 많은 것을 갈망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순수하게 절망한다.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가 갑자기 교체된 정치적 사유를 추측하는 일도, 절차를 무시한 석연치 않은 과정을 부당하게 여기는 것도, ‘여자라서가 아니라, 진행 자질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겨운 가혹함도, ‘자질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적은 기회였다’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울화도. 모두 참되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 가슴에 묻으면서.

▼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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