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20(끝)]
[유라시아=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스페인 일정을 끝으로 우리는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에서 그동안 여정을 함께 했던 ‘칠공이’를 한국으로 먼저 보내는 컨테이너 작업을 하고, 우리도 한국으로 돌아간다. 정말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도 했고, 정말 끝이 나야 끝이라고도 했으며, 누군가는 진정한 끝은 없다고 말했다.
여행의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2월 21일, 파리로 윤 작가의 조카 윤수현이 온다. 이제 숙녀가 된 조카와 일주일을 보낸 후,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다. 조카가 도착하기 며칠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필요한 것들을 정리했다. 되돌아보니 10달이 열흘처럼 지나간 꿈만 같던 여행이었다. 기억의 뒤편에 깊게 숨을 순간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 당황하며 그리워할 추억들이다. 그 추억의 힘은 우리 삶의 영양분이 될 것이다.
20일, 드디어 칠공이를 컨테이너 물류창고에 넣어두고, 우리는 가방 몇 개 달랑 지고 파리 13구로 왔다. 루이비통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을 먼저 찾았다. 여행을 마칠 마지막 7일을 마냥 쉬고 싶었지만, 파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쉽지 않다. 다만 욕심은 내지 말고 그저 가볍게 즐기며 볼 수 있는 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루이비통재단에선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한 번도 볼 기회가 없었던 초기 작품부터 시기별로 볼 수 있어서 너무나 귀한 자리였다. 이미 이슈가 된 작가의 대표작보다는 그 작품의 시발점 역할을 해준 작품들에 더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된 듯 묘한 흥분의 착각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로스코의 깊고 아름다운 동시에 한없이 우울한 느낌의 붉고 푸르른 검은색을 마주했다. 바라보고 있는 순간, 인생의 긴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이다. 뭔가 모를 울렁임과 위로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예술작품의 공감을 통한 교감의 힘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파리 드골 공항으로 가 조카를 만났다. 늦은 밤까지 기나긴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조카도 그림을 그리는 젊은 작가이니, 서로의 꿈을 나누며 많은 공감을 나눌 수밖에.
윤 작가와 함께 그녀를 위해 우리가 다녔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소개했다. 파리시립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Paris)와 바로 옆에 있는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까지 둘러봤다. 전시 관람 못지않게 파리의 매력은 역시 비 오는 날 ‘Pastry Cyril Lignac-Chaillot’의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곧 3월이고 지금은 대부분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는 시즌이었지만, 여전히 좋은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특히 피노 콜렉션(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역시 정말 깜짝 놀랄 만큼의 흥미로운 기획전이었다. 지난해 8월에 왔던 파리의 전시와 달리 6개월 만에 다시 온 파리의 미술관들은 새로운 전시로 우리를 맞아줬다. 그러니 쉴 수가 있나! 부지런히 다시 볼 수밖에!!
모든 게 새롭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늘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주는 존재는 더없이 귀중하다. 오랑주리미술관이 그런 곳이다. 2014년 첫 만남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코로나 이후 거의 모든 미술관은 예약제로 바뀌어 게으른 여행자는 좀처럼 전시 관람이 쉽지 않았다. 꼭 보겠다는 의지로 아침 9시 ‘오픈런’을 감행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었다. 유럽을 돌며 여러 차례 보았던 모네의 다른 작품들까지 떠올라 감동은 배가 되었다.
지금 파리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봄을 재촉하는 비인 듯하지만, 바람도 함께해서 그런지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바람에 우산도 자주 뒤집혔다. 북마케도니아 오호리드에서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금 비싼 가격에 샀던 접이식 우산을 제대로 써먹었다. ‘굿 퀄리티’를 외치던 점원의 말이 파리에서 증명된 셈이다. 몇 번을 뒤집혀 꺾이고도 다시 부들부들 말짱하게 되돌아오니, 이런 작은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또 한 번 웃게 된다.
퐁피두센터에선 동물 그림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질 아이요(Gilles Aillaud, 1928~2005)의 개인전 ‘Animal politique’와 함께 샤갈의 드로잉 전시를 불 수 있었다. 내일은 주말이니 벼룩시장을 가야겠다. 한국으로 떠날 수요일까지 무얼 할까 적어두고는 기억에 남을 여행의 마침표를 예쁘게 찍으려 생각하게 된다.
다음날 다행히 비는 그쳤다. 부지런히 벼룩시장으로 향했다. 유럽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주말 깜짝 벼룩시장은 좋은 그림을 볼 때의 즐거움 못지않게 큰 재미를 준다. 윤 작가도 나도 몇 가지 득템한 후 다시 로댕미술관으로 갔다. 지금 로댕미술관에는 로댕과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조화로운 기획전을 하고 있다. 로댕미술관 입구를 지키는 ‘지옥의 문’을 향해 안토니 곰리의 작품 ‘크리티컬 매스 2’가 정원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천장에 매달린 작품들은 매우 무거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 만약 관람객 없이 큰 공간 안에서 그것을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밝은 대낮임에도 마치 한없는 암흑 공간에 매달려 꿈속을 부유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압도적이었다. 아마도 시공간을 초월해 로댕과 곰리의 만남이 연출해내는 사유적 대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예전이나 지금 다시 온 프랑스 파리는 변함없이 많은 전시와 볼거리로 흥미로웠다. 2~3월 봄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크고 작은 전시들, 거리의 카페와 맛집, 그리고 우리의 오랫동안 쌓인 추억이 함께 한 그 자체로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일정의 쉼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려니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떠오르고 보고 싶은 그리움이 더해갔다. 보드라운 나의 고양이 ‘가을이’와 아이 같은 반려견 ‘산이’도 곧 만나겠구나.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10개월간의 긴 여행에서 느낀 감흥은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담겨 그림으로 옮겨질 것이다. 무사히 끝까지 마칠 수 있었음에 한없이 감사하다. 드디어 생사고락을 같이 한 ‘칠공이’가 선박 컨테이너에 안전하게 실려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마치며 다시 또 시작될 다음의 여행을 위해 남겨놓을 여유를 갖게 된다. 그동안 두서없는 글로 철부지 부부화가의 긴 여행에 함께 해준 모든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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