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지금 가장 핫한 미드는?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4. 3. 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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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900여 년 전, 온 천하에 도적떼 황건적이 기승을 부릴 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세사람이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복숭아 밭에서 “비록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나라를 구하고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자”며 도원결의(桃園結義)했다. 그리고 곧바로 의병을 일으켜 드라마틱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나라와 민초를 구한다는 높은 비젼과 미션의 실행, 한번 맺은 사나이 간의 맹세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그들 유관장(劉關張) 3인의 스토리는 동양적 가치관을 반영한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드라마의 소재이다.

지금 전 세계가 새로운 드라마의 시작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따끈따끈한 ‘미드’이다. 뉴욕 타임즈는 “가장 뜨거운 드라마(The hottest soap opera)”라 표현하며 보도하였다. 다만, 그 드라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 접수된 소장(訴狀)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인류를 위험에 빠트릴 만한 악당이 나오고, 그에 대항하며 인류를 구하자고 의기투합한 3명의 ‘도원결의’도 있어 삼국지처럼 읽는 재미가 솔솔 난다. 첫 대본은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그것은 ‘도원결의’와 AGI의 출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여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요구로 끝나는데, 그 요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20세기에 들어와 인간의 육체노동 기반 경제에서 지식 기반 경제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 변화는 AI(인공지능)의 출현으로 가속되었고, 그것은 점차 더 나은 성과를 내면서 인간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다. 그 예가 1996년 IBM 이 개발한 인공지능 Deep Blue가 체스에서 인간을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특정기능에 한정된 알고리즘이었고, ‘범용(General) 지능’은 아니었으니 걱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Deep Learning’이 저렴하게 실용화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마치 간밤의 혁명 같았다. 그것은 인간처럼 다양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AGI (범용인공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출현이다.

머스크(Musk)는 지구 멸망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 전기차를 만들고, 지구 멸망 시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스페이스 X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AGI가 현재 인류에게 닥친 가장 심각한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이라고 일찌감치 그 실체를 간파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AGI의 자발적 또는 법적 사용중지를 요구하였으나, 세상은 그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았다. 한편 그 ‘실존적 위협’인 AGI를 좀 더 다듬고 훈련시켜 권력과 부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악당같은 세력이 등장하였다. 알파고를 개발하여, 2016년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을 무참히 꺾은 구글이다. 이미 구글은 전세계의 이메일과 검색엔진 그리고 지도와 도서관의 책을 평정하였기에 어마어마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AGI를 통해 인류를 지배하려는 흑심은 깊이 감추어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2015년, 젊은 패기의 올트먼(Sam Altman)과 브로크만(Greg Brockman) 그리고 머스크, 이 3인이 의기투합하여 만났다. 그들은 AGI 가 인류의 존속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구글에 대항하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3인은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영리만 추구하는 구글을 따라잡기 위해 비영리 법인을 설립하고, AGI를 개발하여 인류를 지킬 것이며, 그 AGI는 오픈 소스(Open Source)로서 자료와 기술을 일반에게 개방할 것이다.” 이어 그들 3인은 도원결의와 같은 이 맹세를 ‘Founding Agreement(창립계약)’라 칭하고, 2015년 12월 머스크 등이 출자하여 법인을 설립했다. 그리고 법인 이름을 맏형 머스크의 제안대로 ‘OpenAI’라고 지어 ‘개방성’을 강조하였다.

머스크가 데려온 기술자들은 OpenAI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인 GPT-3와 곧이어 GPT-4를 개발하여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목적대로 구글을 압도하였다. 그러나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영화는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 3인의 굳건한 맹세는 어느 순간 금이 갔다. 머스크는OpenAI의 CEO 올트먼이 초심을 버리고 MS(Microsoft)에 독점적 기술사용권(Exclusive License)을 주면서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렇게 변심한 올트먼에 실망한 OpenAI 이사회는 2023년 11월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CEO에서 해임하였으나, 그 쿠데타는 4일 천하로 끝났다. MS가 역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회 멤버를 교체하고 올트먼을 복귀시킨 것이다.

이제 머스크는 ”OPenAI가 ‘도원결의’ 내용대로 초심으로 돌아가, “MS의 이익이 아닌 인류의 이익(Benefit of humanity)을 위해 AGI를 개발하고, GPT-4등의 소스와 기술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도록 명령”해 달라고 법원에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절대 넘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창작분야까지 이미 인공지능이 들어와 인간을 좌절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통번역이 필요 없게 되어 대학의 어문학과가 문을 닫고 있다. OpenAI의 올트먼은 머스크의 소송 제기 후 즉시, “AGI의 위험을 예방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인류를 위해 AI를 개발하겠다”고 약속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머스크가 배가 아파서 그런 소송을 제기했다고 비난한다.

이 핫(hot)한 미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모른다. 법원은 우선 그들 3인의 ‘도원결의’가 실존하며 법적으로 유효한 것인지, 또 머스크가 그렇게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부터 따져 볼 것이다. 그 후에도 이 드라마가 계속 진행된다면, 구글, MS, OpenAI 등은 인공지능에 대한 그들의 비젼이나 미션을 표명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과연 올트만과 머스크 중 누가 초심을 잃었는지, 누가 인류를 위한다는 의인 코스프레를 쓰고 연극하는지, AGI는 어떻게, 누가 통제해야 하는지, 구글과 MS는 과연 악당처럼 AGI를 비공개로 하면서 돈벌이로 계속 사용해도 되는지 등을 생각해 볼 것이다. 또 기업의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과 사적 이윤의 추구없이, 순전히 인류의 이익이라는 고상한 비젼과 미션만을 추구하면서 비지니스를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의 제약회사 머크 앤 컴퍼니(Merck & Company)는 창사 100주년 기념 책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비지니스의 성공이 인류 공영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기업은 이윤보다 더 고상한 비젼과 미션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면 이윤은 저절로 따라온다.” 항상 고상한 비젼과 미션을 내세우는 머스크가 페르소나(Persona; 가면)없이 진실로 이 말을 믿고 실천하는 것인지, 올트먼과 MS 가 사적 이윤에만 사로잡혀 AGI의 소스와 기술을 공개 안 하는 것인지는 법정 드라마를 더 보면서 판단하고 싶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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