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서울, 아니 한국을 대표하는 고궁 유적이다. 풍부한 역사유적과 함께 경내에 잘 관리된 멋진 조경도 갖추고 있어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은 곳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들은 늘 국내외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고궁이나 역사유적 특유의 유유자적하고 때론 사색어린 정감에 젖기엔 ‘너무 인기가 높은 명소’들이다. 하지만 500년 도읍지 한양답게 서울에는 4대 궁이 아니더라도 봄날 나들이 할 역사명소들이 다양하다. 서울관광재단(대표이사 길기연)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경희궁, 운현궁, 종묘를 중심으로 주변에 함께 가볼 만한 명소들을 묶어 봄 도심여행 코스 3선을 추천했다.
● 미로같은 경내 매력, 운현궁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에서 가까운 운현궁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이다. 조선 26대 왕이면서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이 임금에 오르기 전인 12살까지 거주했다. 조선 말기 왕가의 생활상을 간직한 고풍스러운 공간이다. 당시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품이 있어 지금도 누가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미로처럼 연결된 경내를 지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다. 다양한 기념촬영을 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방문객이 많지 않아 궁의 여러 장소를 배경으로 사용할 수 있다.
운현궁 건너편 계동에는 북촌 설화수의 집과 조향사의 집이 있다.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에서 1930년대의 대저택을 개조하여 만든 곳이 설화수의 집이다. K-뷰티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미용관련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라운지에서는 사전예약을 통해 무료로 다양한 클래스를 진행한다. 윗층에 전통 메뉴로 구성된 차와 베이커리, 논알콜 칵테일을 판매하고 있는 오설록 티하우스가 있다.
북촌 설화수의 집 옆에는 아모레 퍼시픽에서 일하던 조향사의 공간을 테마로 꾸민 조향사의 집이 있다. 자연에서 채집한 수십종에 달하는 향의 원재료부터 그 배합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향기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했다.(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계동 헌법재판소에서는 사전 신청을 통해 견학프로그램을 체험하고, 도서관과 전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약 80분간의 견학을 통해 애니메이션 상영, 헌법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내부의 공개된 공간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계동의 주목할 ‘핫플’로는 또한 최근 새로운 소금빵 맛집으로 떠오른 아티스트베이커리 안국이 있다. 전국에서 소금빵이 맛있기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지금은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야 하는 이른바 ‘오픈런’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감자버터, 유기농 통밀부터 할라피뇨 소시지, 마늘버터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재료를 사용한 소금빵을 맛볼 수 있다.(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 조선 건축의 정수, 종묘
종묘는 조선 건축의 정수로 불리는 곳이다. 조선 왕조의 역대 국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이다. 사적으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영녕전(보물), 종묘제례악(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국가무형문화재) 등이 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시간제 관람으로 해설사를 따라 약 1시간가량의 설명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역사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길과 건축물, 연못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 깃들어있는 의미와 이야기를 함께 알려 준다. 2020년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2024년 9월 완료 예정이다. 그래서 종묘 관람의 하이라이트인 국보급 문화재 정전은 아쉽게도 장막으로 가려져있다. 정전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는 고종 이후 처음이기 때문에 100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1 3 5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
종묘의 서쪽에는 요즘 인기가 높은 도심산책코스 서순라길이 있다. 종로의 분위기를 담은 한옥 식당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고, 돌담길을 따라 거니는 길이다. 조선시대 종묘를 순찰하는 순라청 서쪽에 위치해서 서순라길로 이름 붙여졌다. 낮에도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카페들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특히 저녁 무렵에는 영국식 맥주 펍인부터 일본풍의 한식요리주점, 국내 수제 맥주를 다루는 한옥 펍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전통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서순라길의 한옥 카페 헤리티지 클럽은 이곳의 ‘핫플’이다. 음료와 함께 종묘의 돌담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중정의 뚫린 공간을 모두 유리로 막아 통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그니처 메뉴인 애플 시나몬 라떼는 은은하고 달콤한 맛으로 인기가 좋다.(1 3 5호선 종로3가역 7번 출구)
● 고즈넉한 산책의 여유, 경희궁
서대문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경희궁은 새문안 대궐 또는 서쪽의 궁궐이라 해서 서궐이라 불렸다.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로 한때 왕족의 사저로 쓰였다. 창덕궁과 짝을 이루어 경덕궁으로 불리다가 영조 36년(1760)을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도심 속에 있지만 고즈넉한 편안함이 있는 궁이다.
경희궁을 찾으면 흥화문을 지나 숭정문까지 이어지는 길과 드넓은 광장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숭정문에 들어가기 전 인왕산의 옆모습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경복궁에서 보는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방문객이 많지 않아 궁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천천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많다. 경희궁 둘레에 산책길을 잘 조성해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한다.(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
경희궁 뒷편 언덕에는 과거 서울의 기상관측소였던 국립기상박물관이 있다. 무료주차가 가능하며, 입장, 전시해설 모두 무료이므로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국립기상박물관 내부에는 근현대 이전 조선시대의 기상관측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측우기의 모습이나 기온과 바람을 측정하던 방법을 알 수 있으며, 1932년 당시 경석측후소의 지진계실을 그대로 보존해두어 실제로 지진을 관측, 기록했던 현장을 볼 수 있다. 앞마당의 야외공간에는 식물계절 관측표준목인 단풍나무와 벚나무도 볼 수 있다. 이 두 나무를 통해 서울의 개화시기, 단풍시기를 알려준다고 한다.(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경희궁과 국립기상박물관 사이에 자리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대역사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이름 그대로 마을 전체가 마치 박물관 같이 꾸며져 있다.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라는 역사적 가치와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을 통해 재탄생했다. 좁은 골목마다 다양한 추억의 장소들이 배치되어있다. 특히 중앙 광장의 마을 안내소 건물의 파사드는 현대의 기술과 과거의 장면이 잘 조화되어 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이발소, 극장 등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돈의문박물관마을 전’, ‘이별박물관 전’ 등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도 있다.(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광화문역 7번 출구)
경희궁 인근 고가빈 커리하우스에서는 인도풍의 버터 치킨 커리부터 일본풍의 오믈렛 버터커리까지, 색다른 카레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세련된 분위기 덕에 여행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원한 통창 전망과 쉬림프 시금치 커리, 버터 치킨 커리와 로띠, 라씨 등을 메뉴를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