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시에 ‘음악의 옷’ 입힌… 19세기 예술가곡 ‘모범’[이 남자의 클래식]
결혼앞둔 1840년 4월 작곡
12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집
낭만주의 상념 담백하게 노래
“나는 이상할 만큼 많은 노래를 만들었어요. 밤에 우는 꾀꼬리처럼 나 역시 죽을 때까지 계속 노래할 거예요.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음악을 붙여 12개의 가곡을 썼어요.” 1840년 슈만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1840년은 슈만이 오랜 법정 싸움 끝에 마침내 클라라를 아내로 맞아들인 해로 슈만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해다.
장인의 반대로 1839년 7월 16일 시작돼 무려 1년이나 이어진 ‘결혼 허가 소송’ 재판은 결국 슈만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840년 9월 12일 슈만과 클라라는 쉐네펠트의 게데흐트니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마침내 부부가 됐다. 사랑과 승리의 기쁨 때문이었을까? 이 시기 슈만은 쉼 없이 샘솟는 음악적 영감으로 충만했고, 무수히 많은 걸작을 써내려갔다. 슈만은 1840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120여 개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이는 슈만이 평생에 걸쳐 작곡한 전체 가곡 수의 1/3에 달하는 분량으로 음악사에선 이 특별한 해를 가리켜 ‘가곡의 해’라 부르기도 한다.
슈만은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라는 같은 제목의 가곡집을 2개 남겼다. 하나는 하이네의 시에 음악을 붙인 작품으로 작품번호 24번(총 9곡)이고 다른 하나는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번호 39번(총 12곡)으로 이 두 작품 모두 ‘가곡의 해’인 1840년에 완성됐다.
그중 ‘리더크라이스 op 39’는 결혼을 다섯 달 앞둔 1840년 4월에 작곡된 작품으로 당시 사랑의 기쁨으로 충만해 있던 서른 살의 슈만을 엿볼 수 있다. 슈만과 클라라 두 사람이 사랑의 감정뿐만 아니라 예술적, 음악적 교감 또한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적 교감을 위해 ‘작곡을 위한 다양한 시 모음’이라는 노트를 만들었다. ‘리더크라이스 op 39’는 클라라가 바로 이 노트에 새겨 두었던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슈만이 발췌해 음악의 옷을 입힌 연가곡집이다.
연가곡이란 여러 개의 가곡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완결적 구성체를 가진 가곡 형태다.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 연작시에 음악을 입혀 작곡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헨도르프의 시들은 각각 그리움과 고독감, 불안감, 죽음 등의 변화무쌍한 낭만주의의 상념들을 담백하게 노래할 뿐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는 연작시는 아니다.
작곡가이기 전에 뛰어난 문학가이기도 했던 슈만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12개의 시를 절묘하게 일관성 있는 순서로 재배열했고, 또 시어들에 미세한 변화를 줘 문학적 내용에 일체감을 이뤄냈다. 거기에 어우러지는 절묘한 선율과 조성을 입힘으로써 문학과 음악 간의 완벽한 통일과 조화를 이뤄냈다. 또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불협화음이나 반음계의 사용, 긴 여운을 남게 하는 슈만 특유의 열린 종지를 가미함으로써 깊이 있는 예술성을 더했다. 숲, 꾀꼬리, 달, 밤, 바람 등을 노래하는 시어들은 그를 때론 구체화시키고 또 추상화시키는 피아노와 만나 낭만주의 예술가곡의 정수를 자아낸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슈만 ‘리더크라이스 op 39’
1840년 4월에 작곡된 작품으로 같은 해에 작곡된 연가곡 ‘시인의 사랑’과 함께 19세기 예술가곡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음악을 붙인 12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집으로 1곡 In der Fremde(낯선 땅에서), 2곡 Intermezzo(간주곡), 3곡 Waldesgesprach(숲의 속삭임), 4곡 Die Stille(고요), 5곡 Mondnacht(달밤), 6곡 Schone Fremde(아름다운 낯선 땅에서), 7곡 Auf einer Burg(성 위에서), 8곡 In der Fremde(낯선 땅에서), 9곡 Wehmut(근심), 10곡 Zwielicht(황혼), 11곡 Im Walde(숲 속), 12곡 Fruhlingsnacht(봄밤)의 순으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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