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운해 맛보고 ‘0번지 술집’ 탐방… 현지인처럼 설국의 매력을 즐긴다[박경일기자의 여행]
도심 속 관광호텔 ‘미식투어’
삿포로 스스키노에 ‘오모3호텔’
지역대표 음식 양고기·라멘 등
투숙객 위해 유래·맛집 브리핑
음식점 3000곳 모인 식당가에선
특색있는 선술집·레스토랑 탐방
산속 리조트 ‘힐링투어’
토마무 슬로프 정상선 운해 감상
파도풀 등 온가족 즐기는 체험도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 운치
예배 아닌 결혼식 위해 만들어
얼음마을 같은 상점가는 이국적
삿포로·시무캇푸·오비히로(홋카이도)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겨울이 한창인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 다녀왔다. 홋카이도는 겨울철 강설량이 많고 춥기로 이름났지만 이번 겨울, 눈 가뭄에 이상고온으로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냈다고 했다. 홋카이도에 다녀온 건 기후변화 위기 같은 얘기가 나온 뒤끝이었다. 때아닌 비까지 내렸다니 설국(雪國)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가서 보니 삿포로(札幌) 근교 6개 스키장의 누적 강설량이 어마어마했다. 여섯 곳 중 세 곳이 1m가 훨씬 넘었다. 예년보다 적다는 적설량이 이렇다. 귀국 전날에는 오전부터 삿포로에 폭설이 내렸다. 밀가루 부대를 거꾸로 뒤집어버린 것 같은 엄청난 눈이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진 눈으로 금세 도시 전체가 설국으로 변했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라 해도 홋카이도는, 홋카이도였다.
# 호텔과 음식의 격전지, 삿포로
홋카이도에서 보낸 여정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홋카이도 중심도시 삿포로로 들어가서 내륙의 산중 스키리조트에 갔다가, 거대한 평원의 도카치(十勝) 지방 소도시 오비히로(帶廣)를 거쳐 삿포로로 되돌아왔다.
도시 여행의 뜻밖의 즐거움, 그리고 럭셔리 스키리조트의 쾌적하고 안락함, 시골 여행의 소박한 낭만까지 두루 맛보고 왔다. 지금부터는 그렇게 다녀온 세 곳의 이야기다. 순서대로 첫 번째는 대도시 삿포로, 두 번째는 토마무리조트, 세 번째는 소도시 오비히로다.
먼저 홋카이도의 중심도시 삿포로로 가보자. 삿포로에는 일본의 3대 유흥가 중 하나라는 ‘스스키노’ 지역이 있다. 명확한 경계는 없지만, 술집과 식당이 밀집해 있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여기가 스스키노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스스키노에는 비즈니스 호텔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바야흐로 스스키노는 호텔과 음식의 격전지인 셈인데, 그 한복판에 ‘오모(OMO)3’호텔이 있다. 정식 명칭은 ‘오모3 삿포로 스스키노 by 호시노리조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모3 호텔은 호시노리조트그룹이 운영하는 대중 호텔이다. 호시노그룹은 현대적 감각의 최고급 료칸(旅館)을 선보이며 일본 숙박시장에 뛰어든 이래, 손대는 것마다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켜 온 호텔 운영대행회사다.
여기서 잠깐. 오모3 호텔을 운영하는 호시노그룹의 브랜드호텔 얘기를 좀 더 해보자. 호시노리조트는 일본을 대표하는 호텔리조트 브랜드다. 일본 국내외에서 60여 개 호텔을 경영한다.
호시노그룹은 호텔 기업이지만 호텔을 소유하지는 않는다. 새 호텔을 기획하고 신축하거나 리뉴얼하고, 운영만 전담한다. 운영 중인 60개 호텔의 보유 지분은 2.8%에 불과하다. 나머지 97.2%는 부동산펀드나 리츠회사 소유다. 호시노그룹은 오로지 기획과 경영 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호텔 기업인 셈이다.
호시노그룹이 운영하는 호텔 브랜드는 모두 5개다. ‘호시노야’는 일본의 전통 료칸을 현대적 감성으로 해석한 럭셔리 숙소. 지역의 역사, 문화 등을 건물 디자인과 서비스 등에 반영하는 최고급 호텔이다. ‘호시노 카이’는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전국의 오래된 전통 료칸을 새로 디자인하고 기획해서 만든 호텔 체인이다. ‘리조나레’는 패밀리리조트를 지향하는 리조트 호텔이고, 앞서 말한 ‘오모’는 도시관광 호텔, 그리고 ‘베브(BEB)’는 젊은이들을 위한 시골 호텔이다.
홋카이도에는 호시노의 브랜드 호텔 중에서 호시노 카이와 리조나레, 그리고 오모3와 오모7이 있다.
# 지역에 대한 애정, 그리고 혁신
호시노그룹의 도시관광 호텔 브랜드인 오모호텔은 출장자를 위한 비즈니스 호텔이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도시관광 호텔을 표방한다. 이게 기존의 호텔과 다른, 다양한 실험과 기획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다.
‘오모’호텔에는 카테고리에 따라 숫자가 따라붙는다. 오모3, 오모5, 오모7 등 3가지 종류가 있다. BMW 승용차의 3, 5, 7시리즈 등급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오모 뒤에 붙는 숫자는 방의 크기나 조식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 등 유무에 따라 오모3와 오모5, 오모7으로 나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방이 크고 부대시설을 잘 갖춘 곳이다.
말하자면 오모3는 베이식 호텔, 오모5는 부티크 호텔, 오모7은 풀서비스 호텔이라 할 수 있다. 삿포로 스스키노에 있는 건 베이식 호텔인 오모3이다.
오모호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서비스는 ‘오모 레인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모 레인저는 쉽게 말하면 호텔에 소속된 관광 가이드쯤 된다. 호텔 주변의 흥미진진한 공간을 투숙객에게 소개해주고 함께 찾아다니기도 한다. 숨겨진 곳을 찾아가 거기 사는 이들에게 듣는 인문지리적 잡학(雜學)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삿포로 오모3 스스키노 호텔 오모 레인저는 두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먼저 매일 저녁 호텔 로비에서 삿포로 대표 음식의 유래와 특징을 소개하는 브리핑식 프로그램이 있다. 삿포로의 음식에 대한 소개인데, 식전 시간을 뜻하는 프랑스어 ‘아페로(Apero)’에서 이름을 따서 ‘아페로 미팅’이라 부른다.
삿포로 오모3 호텔의 아페로 미팅 주제는 두 가지. 하나는 홋카이도의 대표 메뉴인 양고기 구이 징기스칸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홋카이도 라멘의 전통에 대한 얘기다. 징기스칸 불판의 특징부터 홋카이도산 양고기를 파는 맛집까지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홋카이도 정통 라멘 식당들이 면을 직접 뽑지 않는 사연도 흥미진진했다.
# 현지인처럼 여행하기…개척 투어
이것보다 더 즐거웠던 건 오모 레인저가 투숙객을 이끌고 호텔 주변의 식당가를 도는 ‘개척 투어’다. 스스키노 주변의 3000개 음식점이나 술집 중에서 오모 레인저들이 직접 가보고 맛있었거나, 특색 있거나, 흥미로운 곳들을 골라서 함께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오모 레인저가 안내한 공간 중 가장 이색적이었던 곳이 ‘스스키노 제로(0)번지’였다. 온통 빌딩과 유흥업소로 둘러싸인 스스키노 한복판에 1958년 지어진 5층짜리 낡은 공단아파트 건물이 있다. 홋카이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의 거리가 100m쯤이나 되는 크고 낡은 건물인데 1층은 시장이고, 그 건물 지하에 스스키노 제로번지가 있었다.
스스키노 제로번지란 66년 된 일종의 주상복합 건물 지하의 술집과 식당가 골목 이름이다. 건축 당시 지하상가에는 잡화점이나 치과의원이 들어서 있었는데, 영업 부진이 계속되자 1971년 지하상가 전체를 술집과 음식점으로 리뉴얼했다. 홋카이도 최초의 지하 음식점 거리의 탄생이었다.
제로번지란 이름은, 지상 건물이 1번지였으니 번지수가 없던 지하는 0번지란 뜻에서 붙여진 것. 스스키노 유흥가의 원조, 혹은 출발 지점을 자처한다는 의미도 있다. 스스키노 아파트 자리는 홋카이도 개척 당시, 관에서 운영하던 유곽이 있었다. 유곽이 옮겨간 뒤에는 공영시장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스스키노 제로번지에는 스낵바나 선술집(이자카야)을 비롯해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커피숍 등 30여 가게가 입점해 있다. 손님 자리가 8석 전후인 작은 가게가 대부분인데, 3분의 1쯤은 개업 30년이 넘었고, 가게 절반쯤이 20년 이상 됐다.
제로번지 가게는 영업 방침부터 메뉴, 분위기는 물론이고 가게 주인의 성향까지 하나같이 다 독특하다. 몇 달씩 가게 문을 닫고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다녀온 나라에서 배워온 음식을 팔고 있는 레스토랑이 있는가 하면, 오로지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이유 하나로 실내 온도를 한여름처럼 올려놓은 카페도 있다.
오모 레인저의 존재는 여행문화의 두 가지 변화를 정확하게 관통한다. 하나가 주변 사소한 공간을 샅샅이 여행하는 ‘마이크로 투어리즘’. 다른 하나는 도심의 공간을 재발견하는 ‘도시재생’이다.
오모3 호텔은 라멘식당이 밀집한 라멘골목의 가게 세 곳에서 각각 하프사이즈 라멘을 시식할 수 있는 쿠폰도 제공한다. 라멘 시식쿠폰은 물론이고, 호텔 로비에 지도를 펼쳐놓고 가볼 만한 식당을 소개하는 ‘고킨조(近郊)맵’에서도, 엽서 형태의 식당소개 안내 카드 등에서도 호시노그룹의 이런 시도가 읽힌다.
# 버블 시대 리조트가 가족리조트로
이번엔 호시노의 리조트 브랜드 얘기. 홋카이도 한복판에는 거대한 산군(山群)을 이룬 히다카(日高) 산맥이 있다. 멀리서도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위용과 산세가 압도적이다. 일본 산악인들이 평생 꼭 한번 도전하고 싶어 하는 것이 ‘히다카 산맥 종주산행’이란다.
홋카이도의 등줄기 같은 히다카 산맥의 한 자락을 이루는 봉우리가 도마무산(1293m)이다. 산이 깊고 해발고도가 높아서 연중 5∼6개월은 눈으로 뒤덮여 있는 곳이다.
도마무산 아래 스키리조트인 호시노리조트 토마무가 있다. 리조트는 두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리조나레’이고, 다른 하나는 ‘더 타워’다. 부대시설을 모두 공동으로 쓰지만, 리조나레와 더 타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전 객실이 스위트룸인 리조나레가 고급스러운 느낌이라면, 더 타워는 분위기가 젊고 역동적이며 가족적이다.
사실 호시노리조트 토마무의 첫인상은 뜻밖이었다. ‘더 타워’는 이름처럼 두 동의 고층 건물. 리조나레 역시 두 동의 늘씬한 고층 건물이다.
고층 건물 고급 리조트라니. 어쩐지 차갑고 낯선 느낌이다. 이렇게 훌륭한 자연경관에 이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을까. 연유가 있다. 토마무리조트의 전신은 일본의 버블 경제 시절 지어진 ‘알파리조트’다. 알파리조트는 비정상적 자산 가치 상승으로 소비가 폭발하던 거품경제 시절,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과시하듯 지어낸 최고급 리조트다. 모르긴 해도, 일본에서 드문 고층 리조트를 지은 것도 당시 일본인들이 취해 있던 성공과 부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리라.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알파리조트는 당연히 도산 위기에 몰렸다. 폐허로 남아 흉물이 될 뻔한 버블 시대의 리조트를 살려낸 건 호시노그룹이었다. 2004년 망해가는 스키리조트 운영을 맡아 스키어 위주의 스키리조트를 패밀리리조트로 바꿔놓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체화됐다.
# 테라스의 운해, 레스토랑의 설경
호시노리조트 토마무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장소라면 단연 사계절 운해를 만날 수 있는 슬로프 정상의 ‘운카이(雲海) 테라스’다. 이곳에서 기막힌 운해를 40%쯤의 확률로 볼 수 있다는데, 사흘쯤 리조트에 묵는다면 운해를 볼 확률이 90%에 가까워진단다.
운카이 테라스는 도마무산 정상 아래의 구릉 일대를 통칭하는데 무빙테라스, 그물침대 형상의 조형물, 클라우드 바, 클라우드 워크 등이 들어서 있다.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라 아쉽게도 운해는 보지 못했지만, 온통 순백의 근사한 설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호시노리조트 토마무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물의 교회’도 있다. 예배 아닌 결혼식을 위해 건축적 미감이 드러나도록 설계한 교회다. 다른 계절에는 예배당 앞 연못 수면 위로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모습이 압권이었는데, 연못이 눈으로 뒤덮인 겨울에도 나름의 운치가 느껴졌다.
리조트에는 유리온실 같은 실내 파도풀 ‘미나미나비치’와 노천탕 ‘기린노유’도 있다. 얼음으로 구현한 식당과 상점가가 있는 아이스빌리지는 25년째 겨울철 호시노리조트 토마무를 장식해온 명물이다. 이 밖에 스노모빌 타기, 승마 체험, 스노 피크닉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호시노리조트 토마무를 명실상부한 ‘가족리조트’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건 다양한 레스토랑이다. 리조트 안에 자그마치 20개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개방감 넘치는 숲속의 겨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대형 레스토랑 ‘니니누프리’다. 사방을 투명 유리로 마감한 높은 층고의 건물이라서 숲의 설경이 마치 실내로 밀려 들어오는 듯했다. 리조나레 토마무 31층 레스토랑 ‘소라’는 눈으로 뒤덮인 리조트 전경을 새의 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명소다. 밤이면 불을 켜는 상점가 ‘호타루 거리’도 낭만적이었다.
# ‘도카치 맑음’의 도시의 매력
이제 홋카이도 내륙의 소도시 이야기다. 토마무에서 가장 가까운 소도시가 ‘오비히로’다. 오비히로를 포함한 홋카이도 남동부 일대를 흔히 ‘도카치(十勝)’ 지역이라 부른다. 너른 평야로 이뤄진 대규모 농업지대다.
도카치 지역은 ‘일본의 식품 기지’라 불릴 정도로 농업과 목축업이 성해 식량 자급률이 1100%에 달한다. 생산량도 양이지만, 품질 좋기로도 이름이 났다.
도카치 지역은 겨울에 특히 여행하기 좋다. 겨울 홋카이도는 흐리고 눈 내리는 날이 많은데, 도카치 지역은 히다카 산맥이 눈구름을 막아줘 맑은 날이 많다. 새파란 하늘의 맑은 겨울날이 많아서 이런 날씨를 일컫는 ‘도카치 맑음’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다.
오비히로에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기차역이 있다. ‘행복역(幸福驛)’과 ‘애국역(愛國驛)’이다. 두 곳 모두 오비히로 시내에서 남쪽으로 20㎞ 쯤 떨어진 외딴 시골 마을의 작은 역이다.
행복역은 1956년 놓인 오비히로에서 히로오(廣尾)까지 80㎞를 연결하는 일본 국철 히로오선에 설치된 역이다. 역명은 역 주변 지명인 ‘고후쿠초(幸福町)’에서 왔다. 왜 고후, 그러니까 ‘행복(幸福)’일까. 홋카이도 개척 시기, 이 지역은 원주민 아이누어로 ‘마른 강’을 뜻하는 ‘사쓰나이(幸震)’로 불렸다. 이곳에 본토의 후쿠이(福井)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사쓰나이의 한자 ‘행(幸)’에다 후쿠이현의 한자 ‘복(福)’자를 붙여 행복이 됐다.
행복역 두 정거장 앞에는 ‘애국역’이 있다. 애국이란 ‘애국정(愛國町)’에 있는 역이다. 정(町)은 우리로 치면 읍(邑) 정도의 행정단위. 홋카이도 개척 시기에 이 지역에 ‘애국시민단’이란 이름의 개척단이 들어온 게 역 이름이 됐다. 역 이름이 애국이라니, 이 무슨 군국주의적 발상이냐 싶은데 해석이 좀 다르다. 여기서 애국은 ‘나라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나라’다.
# 폐역이 연인의 성지가 되다
행복역과 애국역, 이 두 역은 1973년 일본 NHK TV 다큐멘터리 ‘신 일본기행’에 소개되면서 일약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적자 운영에 허덕이던 히로오선은 ‘사랑의 나라에서 행복으로’란 구호를 내걸고 애국역에서 행복역까지 가는 기차표를 팔았다. 그 결과 전년도에는 7장밖에 팔리지 않았던 이 구간 표가 그해 300만 장이나 팔렸다. 이후 4년 동안 여행 기념품이 된 기차표는 10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히로오선은 적자 경영으로 1987년 폐선돼 선로도 걷히고 관광지가 된 역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신세지만, 지금까지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객 중에서도 특히 연인들이 많았는데, 이곳이 2008년 ‘연인의 성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비영리법인 ‘지역활성화지원센터’에서는 일본 전역에서 로맨틱한 데이트 장소를 골라내서 ‘연인의 성지’란 이름표를 붙여줬다. 모여서 참, 별걸 다 한다. 아무튼 여기 행복역과 애국역은 도쿄(東京) 팔레트타운 대관람차, 롯폰기힐즈 전망대 등과 함께 일본 전역 137곳의 연인의 성지 중 하나다.
자그마한 폐역은 갖가지 사연과 소망을 적은 포스트잇으로 가득하다. 행복과 사랑을 이루려는 연인과 가족들의 메모다. 몇 개만 읽어보자. ‘소중한 사람에게 행복이 오기를…’‘사랑을 맹세합니다’. 짝 없이 혼자 온 이는 ‘멋진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란 소원을 써서 매달아 놓았다. 전 세계 어디든 연인들은 사랑하고, 소망은 비슷하다.
■ 영화 ‘철도원’의 기차역
호시노리조트 토마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문 닫은 기차역 이쿠토라(幾寅)역이 있다. 이쿠토라역은 영화 ‘철도원’의 로케이션 장소다. 영화 속에서는 평생 철도원으로 일한 주인공이 근무하는 호로마이(幌舞)역으로 나온다. 1999년 작이니 개봉한 지 25년이나 지났지만, 역사(驛舍)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고 영화 팬들의 발길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역에는 당시 영화 촬영 당시 이야기가 소개돼 있고, 과거 기차역에서 쓰던 유물 등을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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