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일대일로에 맞서 ‘21세기 판 향신료길’ 추진하는 인도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프로젝트가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해상로 공격을 계기로 본격 추진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IMEC 프로젝트는 '21세기 판 스파이스 로드'(Spice Road·향신료길)로 불린다. 향신료길은 기원전 10세기~기원후 15세기 인도와 동남아 등에서 재배된 향신료가 중동 지역을 거쳐 유럽까지 전파된 루트를 일컫는다.
스파이스 로드 재연
IMEC 프로젝트는 인도-중동-유럽을 철도와 해상 수송로로 연결해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상품 등을 이동하는 것이 목적인 사업이다. IMEC 프로젝트에는 데이터 전송을 위한 해저 광케이블과 청정 수소 파이프라인을 설치해 통신 및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IMEC 프로젝트는 지난해 9월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미국 주도로 추진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부 정상과 별도로 회의를 갖고 IMEC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미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IMEC 프로젝트 양해각서에 서명까지 했다. 이외에도 이스라엘과 요르단, 그리스가 IMEC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이 회랑은 무역과 에너지 수송을 강화하고, 디지털 연결성을 개선할 것"이라면서 "유럽, 중동, 아시아 사이에 철도와 항구를 연결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견제하고자 IMEC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부터 추진해온 국가사업이다. '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을 잇는 육해상로를 개발하고, 관련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해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종의 대외 팽창 사업을 일컫는다. 말 그대로 '21세기 판 실크로드'(Silk Road·비단길)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앙숙이던 사우디와 이란을 화해시키는 등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고심하다가 인도, 유럽 국가들과 손잡고 IMEC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 미국 중재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다른 아랍 국가들이 뒤따라오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가자 전쟁이 촉발됐고,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보류했다. IMEC 프로젝트도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치솟는 물류비에 대응 나선 국가들
각국 선박의 홍해 항행이 어려워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류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홍해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거리 항로로, 전 세계 해상 운송의 15%가 이곳을 지나간다. 현재 각국 선박은 홍해를 우회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실정이다. 이 수송로는 1만3500해리 (약 2만5000㎞)에 이르러 이동하는 데 34일이나 소요된다. 3500해리(약 6500㎞)를 더 가야 하기 때문에 물류 운송 기간이 많게는 2주까지 늘어나고, 비용도 추가된다.
IMEC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는 인도와 중동의 아라비아만을 연결하는 '동쪽 회랑'과 아라비아만에서 유럽을 연결하는 '북쪽 회랑'으로 구성된다. 인도 뭄바이 등 3개 항구에서 UAE 두바이항까지 뱃길을 통해 상품과 에너지를 옮긴 후 UAE에서 철도로 사우디,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 하이파항까지 운송하고 다시 배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으로 수송하는 식이다(지도 참조). 인도 뭄바이항에서 두바이, 사우디, 이스라엘 하이파항과 지중해를 거쳐 유럽 대륙으로 이어지는 IMEC 프로젝트의 루트는 인도 무슬림 제국인 아바스 왕조(750~1258)가 인도양과 지중해를 묶은 이슬람 제국 네트워크,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 시대' 항로, 영국과 네덜란드의 아시아 무역항로와 거의 같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 국제무역 중심 되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월 13일 UAE 아부다비를 국빈 방문해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과 만나 IMEC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 인도와 UAE는 그동안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2014년 취임 이후 UAE를 7번이나 방문했다. UAE 전체 인구는 1000만여 명인데 인도계 이민자, 다시 말해 인교(印僑)가 35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UAE 국적을 가진 UAE 국민이다. 이런 친밀한 관계 덕분에 양국의 지난해 교역량은 850억 달러(약 113조4700억 원)에 달했다. 인도 무역 상대국 3위가 UAE다. 인도와 UAE는 2022년 7월 미국, 이스라엘과 함께 'I2U2'라는 4개국 경제협력체를 구성해 물과 에너지, 교통, 우주, 건강, 식량 등 6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양국은 IMEC 프로젝트 추진에 의기투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동의 고차방정식이 변수
IMEC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에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 중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도 최대 재벌 아다니그룹은 이스라엘 하이파항의 항만 운영권을 갖고 있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과는 무관하게 앞으로도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을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방은 후티 반군이 선박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레이더 기술이 없고 해군력도 변변치 않은데도 홍해를 봉쇄하고 장기전을 벌이겠다는 것은 이란의 지원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란의 의도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해결이 어렵고 복잡한 중동 지역의 고차방정식에도 IMEC 프로젝트가 성사될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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